바둑 불모지 호주에 한국바둑을 보급하고 있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기계(棋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허기철(36), 이세나(30) 부부가 바로 호주의 바둑전도사들.


남편 허기철씨는 지난해 연말부터 호주에 체류하며 한국바둑의 본격적인 전파를 준비하고 있고, 아내 이씨는 1월 남편을 돕기 위해 호주를 다녀왔다.


이세나씨는 국제기전 2관왕 이세돌 9단의 친누나이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여자 아마바둑계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고수.


이씨는 이번 호주 방문에서 때마침 열리게 된 현지 바둑대회에 참가했다.


1월21일과 22일 퀸즐랜드주 브리스번에서 열린 제3회 도요타 덴소배 세계바둑왕좌전 출전을 위한 오세아니아 대표선발전.

이씨는 호주의 강자그룹을 모조리 연파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해 한국 여자바둑의 매서움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외국인 신분이기에 대표로 선발되지 못하고 우승상금 1천달러에 만족해야 했지만 국제기전사상 최초로 이세돌, 이세나의 남매대결이 펼쳐지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항공대를 졸업한 뒤 바둑에 푹 빠져 '외도'한 허씨가 아내 이씨를 만난 것은 지난 2002년이다.


인터넷 바둑사이트 위고바둑에서 기자로 서로 만났으니 이른바 사내커플이었다.


위고바둑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후 허씨는 처남 이상훈 5단이 운영하는 바둑도장에서 실장으로 일했다.


원생 관리와 학부형 상담, 대회 출전 업무 등 도장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일들이 그의 몫이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바둑기자 생활과 도장 일을 하며 느낀 것은 앞으로 한중일 3국만의 시장으로는 더 이상 바둑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서양에 바둑을 보급하는 일이야말로 최선의 타개책이자 외길이라고 보았죠"


지난해 12월 허씨는 모든 일을 접고 호주행을 감행했다.


각오는 했지만 현지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허씨가 기착지로 삼은 시드니의 전체 인구는 600만명 정도. 이 중 한인 교포는 6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바둑인구는 호주바둑협회에서조차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실정이었다.


한 군데 있던 기원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현재는 소수의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시내 몇몇 클럽에서 바둑이 두어지는 정도이다.


"저희 부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입단을 하지 못한 한국기원 출신의 아마 강자들입니다. 이미 프로에 버금갈 정도의 기량을 갖췄으면서도 프로가 되지 못해 바둑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서양의 문화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래서 장차 그들이 유럽, 미국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바둑을 보급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허씨 부부의 목표는 우선 시드니에 기원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대한바둑협회 또는 한국기원의 호주지부를 세우고 싶어 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바둑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개인지도를 원하는 현지인들이 늘어나고 있어 마음이 가볍다.


"한국바둑은 그 동안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며 많은 것을 누려왔습니다. 이제 그 일부분이나마 세계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한국바둑! 파이팅!"



(서울=연합뉴스) 양형모 객원기자 ranbi36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