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틴전시 경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시나리오경영 '스타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1일 달러당 원화 환율이 960원 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1월 이후 무려 8년3개월 만에 960원 방어선이 무너졌다.
올해 환율 마지노선을 평균 950원 선으로 잡고 사업계획을 짰던 국내 수출기업들에는 최악의 상황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셈이다.
매출의 80%이상을 수출에 매달리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간판 대기업들에 환율은 최대 복병이다.
브레이크 풀린 듯 하락과 상승의 속도를 더하는 환율,유가,원자재값 등의 경영변수에 기업의 경영기획 라인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경영변수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나.
이럴 때 위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컨틴전시(Contingency) 경영'이다.
컨틴전시 경영은 당초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천재지변 테러 등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비상경영에서 출발했으나 최근에는 환율처럼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고려한 시나리오 경영의 의미로 쓰인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의 기업경영 키포인트 7개 중 하나로 컨틴전시 경영구축을 제시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태풍 테러 등 기업활동의 영속성 자체를 위협하는 경제외적 변수에 대한 관리와 함께 환율 유가 등 경영의 직접적 요인에 대한 복합적 시나리오 경영이 필요하다는 것.특히 우리 기업들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우 이러한 외부요인에 대한 컨틴전시 경영 구축이 시급하다는 게 LG경제연구원의 지적이다.
실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차 등 국내 간판기업들은 매출의 80%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국외의 시장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당장 삼성전자의 경우 달러당 환율이 1000원에서 900원으로 떨어지면 영업이익 2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홍석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점차 환율리스크 비중이 커졌다"며 "앞으로 컨틴전시 경영제제구축 여부가 기업성장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율은 기업들에 가장 위협적인 절대변수다.
특히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은 환차손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원화가치 상승은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수출둔화로 이어진다.
설사 수출물량이 늘어도 적자투성이의 '속빈 강정'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경영환경에 대한 솔루션은 단 하나다.
컨틴전시 플랜을 통한 상시 위기관리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컨틴전시 경영의 국내 원조격인 삼성은 올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시장변화에 대처하고 있다.
환율 955원을 기준으로 두고 올해 그룹매출 150조원,경상이익 18조원으로 목표를 잡고 있다.
하지만 공식 목표환율 전후에 별도의 환율시나리오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환율의 불안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올해 영업이익 10조원 재탈환 목표는 달성하겠다는 의지다.
최근 유럽지역 수출증가와 이에 따른 유로화 결제 비중 증가,높은 반도체 비중 등으로 환율리스크를 상쇄할 만한 '버퍼 존'(buffer zone:완충지대)을 구축해 놓았다는 자신감이다.
삼성전자 주우식 IR팀 전무는 "수출비중이 85%인 삼성전자에 여전히 환율이 큰 변수이나 사업구조 내 완충지대 덕분에 목표실적을 이루는 데 절대변수는 아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환율 마지노선을 달러당 950원선으로 잡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았다.
LG전자의 환리스크 관리는 크게 세 가지.우선 수출입 통화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를 위해 LG전자는 올해부터는 현재 80% 선인 달러화 결제비중을 줄여 나가기로 했다.
유럽시장에서는 유로화 결제비중을 지난해의 50%에서 올해는 80%까지 높여 환리스크를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환율변동에 따라 외화 매출채권,매입채무 잔액 및 외화 지급시기 조정 등의 시나리오 경영도 강화하고 있다.
받을 외화와 줄 외화의 타이밍을 조절해 위험을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최근 수년간 해외시장에서 대약진을 거듭해 온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6일 '경영전략추진실'을 신설하고 4대 대기업 중 가장 먼저 비상경영제체를 가동했다.
연초부터 환율 유가 등 주요 경영변수가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달러당 예상 환율을 950원으로 잡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환율 970원 밑에서는 이익을 남기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환율 100원에 매출 2조원과 순이익 7000억원이 왔다갔다 하는 실정이다.
현대차는 임직원 정신재교육,비용절감 등의 내부노력과 함께 수출지역과 생산기지 다변화를 통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인도 첸나이,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이어 올해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에도 현지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SK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주력 계열사인 SK㈜는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해 인천정유 인수를 결정한 데 이어 올해는 고도화설비투자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과감한 투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메이저 기업으로 도약,세계 정유업계에서 살아남겠다는 전략이다.
또 중국 시장을 제2의 내수시장전략으로 키우는 등 해외시장공략을 위해 지난해보다 약 20% 늘어난 6조원을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투입할 계획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