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헤르메스 펀드를 73억원에 약식기소하며 외국계 펀드에 처음으로 칼을 빼든 검찰의 처분은 외국계 자본들의 불법행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 조사 이후 헤르메스에 대한 영국 금융당국의 자체 조사가 예상되는 데다 헤르메스 주가 조작 혐의가 최종 확정되면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집단소송도 가능해 향후 헤르메스의 대응이 주목된다. ○헤르메스 펀드매니저의 단독 범행 삼성물산 주식의 5%(777만여주)를 갖고 있던 헤르메스는 2004년 11월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삼성물산을 인수·합병(M&A)할 세력을 지원하겠다는 사실을 흘려 주가를 끌어올린 뒤 삼성물산 지분을 전량 매각,292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에 증권선물위원회는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헤르메스 펀드와 한국 투자를 담당하고 있던 헤르메스 소속의 펀드매니저 클레멘츠씨,그의 언론 인터뷰를 주선한 김 모 전 대우증권 대리를 지난해 8월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번 주가 조작 행위를 클레멘츠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검찰은 2004년 말 당시 한국에 6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던 헤르메스가 한국 투자액을 줄이려 했던 여러 정황을 포착했다.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클레멘츠씨는 2004년 12월1일 언론을 통해 삼성물산 M&A설을 유포,삼성물산 주가를 끌어올린 뒤 2일 만에 헤르메스 펀드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777만2000주를 모두 팔아 292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검찰에 따르면 클레멘츠씨는 언론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12월2일 김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Good article,very aggressive(기사가 매우 공격적이어서 참 좋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클레멘츠씨를 고용한 헤르메스 펀드를 양벌규정에 의거,73억원에 약식기소했다. 헤르메스 펀드는 292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지만 불법적으로 얻은 부당이득액은 세금과 수수료 등을 뺀 73억원이라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검찰 관계자는 "앞으로 영국 금융당국이 헤르메스 펀드를 직접 조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에 대해서는 단순히 인터뷰할 언론만 소개한 중개인으로 해석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식 재판이나 집단소송으로 가나 헤르메스는 이날 홍보대행사를 통해 내놓은 보도 자료를 통해 "검찰의 처분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향후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자사의 법률자문팀과 협의 중"이라고 밝혀 정식 재판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내비췄다. 피의자가 검찰의 약식기소에 불복하며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 해당 재판부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헤르메스의 주가 조작으로 피해를 본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할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하창우 대한변협 공보이사는 "불법행위를 통한 부당이득이 인정되면 공모 혐의가 없더라도 원칙적으로 손해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증권 집단소송 전문인 김주영 한누리 변호사는 "주가 조작 혐의가 인정되면 소액주주들의 집단 소송이 가능하다"며 "외국계 펀드에 대해 형사 처벌된 전례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검찰의 결정이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조사를 받고 있는 론스타 처리 여부에 어떤 영항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