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파워 度넘어 '횡포' ‥ 증권사들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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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대형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같은 회사 내 영업담당 직원으로부터 왜 A사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느냐는 항의성 질문을 받은 것이었다.
주식형펀드 수탁액이 4조원을 웃돌고 증시에 대한 영향력이 무시못할 큰손인 M투신운용사가 매집 중인 종목에 대해 '중립'의 투자의견을 낸 게 화근이었다.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으로선 이 보고서로 주가가 하락,M사로부터 미움을 받아 M사의 주식매매 주문이 줄어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것이었다.
이처럼 기관화 장세가 가속화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과거에도 기관이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과시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들어 기관 입김이 애널리스트 분석보고서 내용을 좌우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코스닥 B사는 최근 한 증권사로부터 올해 턴어라운드할 것이란 호평을 받았다.
이 증권사가 보고서를 낸 시점은 기관이 이미 대규모 매수를 끝내고 나서 일정 기간이 지난 후였다.
기관 보유종목은 현재주가가 목표가를 웃돌아도 애널리스트들이 투자의견을 '시장수익률'로 낮출 수 없는 '성역'이 돼가고 있다.
대형 기관의 눈에 벗어나면 이들로부터 주문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의 법인영업 담당자는 "시장영향력이 커진 자산운용사의 힘이 워낙 막강해 이를 무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특히 중소형 증권사들로선 기관 눈치보기에 급급하다"고 털어놨다.
기관의 매도 행태도 문제로 꼽힌다.
최근 코스닥 C사는 기관의 매도 공세로 주가가 급락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기관이 수익만 따지다보니 열흘에 걸쳐 매도하면 시장이 도저히 소화할 수 없게 된다"며 "개인 투자자로선 앉아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관이 시장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상승을 주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수익률 지상주의 속에서 일부 기관의 그릇된 행태가 증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