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수술 후속 정밀진단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해외체류가 4개월 보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회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지난 9일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단행했고 각 사업 사업계획 수립도 완료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경영에는 별다른 차질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회장이 없는동안 삼성그룹은 '의전 서열 1위'인 이수빈 삼성사회봉사단장(회장)과 이학수 그룹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인 윤종용 부회장 등의 '삼두체제'로 운영되는 양상이다. 올해 67세로 1965년 삼성에 입사해 현역 가운데서는 최고참인 이수빈 단장은 지난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년하례식 때 가장 앞자리에서 참석 임직원들의 인사를 받는 등 이 회장이 없는동안 대내적으로 그룹을 대표하는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해마다 이 회장이 맡았던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도 올해는 이 단장이 대신했다. 반면에 대외적으로는 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의 윤 부회장이 삼성을 대표해 나서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에 이 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것도, 지난 11월 열린 전국경제연합회의 조지 부시 전(前) 미국 대통령 초청 만찬 때 삼성을 대표해 참석한 것도 윤 부회장이었다. 그러나 그룹 전반의 경영을 챙기고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집행하는 '업무상의 2인자'는 이학수 본부장이라고 삼성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이 본부장은 평소에도 '이건희 회장의 분신'으로 불리며 그룹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이 회장이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그의 역할은 더욱 커진 양상이다. 이 본부장은 이 회장이 미국과 일본에 머무는 동안 2주에 한번꼴로 출국해 이 회장을 직접 만나 그룹 인사와 주요 사업계획 등 현안에 관해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집행하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에 있는 동안에도 주로 이 본부장을 통해 주요사안을 보고받아 왔지만 주요 계열사 경영진은 물론 가끔은 실무급 임직원까지도 불러 담당 업무에 관해 질문하거나 의견을 구하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이 외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그룹 수뇌부 가운데 이 회장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이 본부장밖에 없다. 이 회장은 보고를 받을 때 방대한 관련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보안문제도 있어 전화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회장의 '눈과 귀, 입' 역할을 독차지하게 된 이 본부장의 비중은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이 회장이 국내에 없더라도 경영에 차질이 없도록 나름의 시스템을 정착해가고 있지만 '원격통치'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이 회장이 스스로 절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 점때문에라도 이 회장의 해외체류가 무한정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 일본으로 거처를 옮긴 이 회장은 설 이전 귀국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삼성측은 "정해진 일정 등을 감안할 때 귀국은 빨라도 다음달이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