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우리사회의 '과속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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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줄기세포 스캔들이 휩쓸고 간 황량한 벌판에도 희망의 불빛은 보인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지난 5일 '세계경제 및 국제 형세에 관한 보고서(2006년도 世界經濟黃皮書 및 國際形勢黃皮書)'를 발표했다.
한국을 세계 9위의 강대국으로 평가한 것도 그런 밝은 불빛의 한 자락이다.
중국 최고의 싱크탱크라는 사회과학원은 국내총생산(GDP)ㆍ군사력ㆍ외교력ㆍ자본력ㆍ기술력ㆍ자연자원ㆍ인적자원ㆍ정부의 조정 통제력ㆍ정보통신 등 9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하고,그 종합점수로 순위를 매겼다.
상위 10개국은 압도적 1위인 미국(90.69점)과 그 아래 영국(65.04) 러시아(63.03) 프랑스(62.00) 독일(61.93) 중국(59.10) 일본(57.84) 캐나다(57.09) 한국(53.20) 인도(50.43)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정보통신 부문에서 80.88로 미국과 일본 다음인 3위를 차지했고,기술력은 캐나다 러시아 중국 인도를 앞서는 것으로 평가됐다.
자연자원과 자본력,외교력은 모두 9~10위에 머물렀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한국의 과학기술은 1960년대 이래의 놀라운 경제 발전으로 가능해졌다.
'한국의 간디' 함석헌(1901~1989)은 우리 역사를 '학대받은 계집종' '갈보였던 계집' 등으로 표현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펴내면서 쓴 표현이다. 그가 당시의 한국을 얼마나 어둡게 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후 40년 만에 한국은 세계 10대 강국 소리를 듣게 됐다.
한 달 전 우크라이나 대학에서 강연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을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라 치켜세웠다.
해방 당시 한국의 과학기술은 그야말로 미개국 수준이었다.
4년제 이공계 대학 졸업자가 200명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남과 북은 각각 100명을 데리고 나라를 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북쪽이 성공적이었지만 1960년대 남쪽의 경제 건설,특히 1966년 미국의 도움으로 과학기술연구소(KIST)가 문을 열면서 한국의 과학기술은 차츰 북한을 앞서나갔다.
수많은 유학생이 귀국해 국내 과학기술 수준을 높여갔다.
지금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는 세계 1등이고,세계 다섯 번째라는 고속철 KTX는 이제 자체 기술을 외국에 수출할 수준에 있다.
40년 세월에 미개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정말로 '빨리 빨리'로 모든 것을 성취했다.
이렇게 한국인이 과속(過速)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60년대 이후의 놀라운 경제 성장이며, 둘째 일제 때까지의 억압됐던 민족적 에너지가 경제 성장 덕택에 폭발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7세기 서양의 '과학혁명' 역시 그에 앞선 '지구상의 대발견'으로 인한 경제성장이 그 지적 에너지를 폭발시켜 주어 가능했던 일임을 연상시켜 준다.
서양이 400년 만에 도달한 수준을 한국은 40년 만에 이룩했다면 과장일까?
억압됐던 민족적 에너지의 폭발은 한국 문화의 다양한 발전에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소위 '한류(韓流)' 역시 이런 폭발적인 한국인의 에너지가 흘러 넘쳐난 성과다.
줄기세포 사건 역시 과학기술의 강대국 문턱에 선 한국인의 폭발적 에너지의 한 표현이란 생각도 든다.
'과학'이란 속세를 벗어난 진리의 세계로 생각하기 쉽지만,과학사에 사기 사건은 얼마든지 많다.
그 현란한 세계과학사의 사기 사건 리스트에 한국도 한 발 낄 수 있게 됐으니,우리도 과학강대국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증거 아니고 무엇인가?
하지만 우리의 '과속증(過速症)'은 심각한 위험을 예고하고 있다.
오늘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극단적인 의견의 편차는 실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고,그 역시 우리 과속증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줄기세포 사건이 그런 과속증의 후유증인 것이나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은 너무나 모든 일을 단번에 해결하겠다고 설치는 것이 아닐까? 좀 차분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