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다산칼럼] 왜 하필이면 유시민인가?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양봉진 < 비상임 논설위원·세종대 교수 > 왜 하필이면 유시민인가? 그 답은 너무 쉽다. 노무현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은 '표'라는 생각에 미치면 결론은 뻔하기 때문이다. 호남표는 민주당에 잠식된 지 오래다. 영남표는 건드려 보기도 어렵다. 행정도시로 한껏 재미를 본 충청표 또한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표에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그러니 결론은 한 가지. 복지부야말로 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황금어장'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 황금 표밭에 평소 아끼던 쟁기를 대 봤으나 점잔만 빼고 앉아 있었을 뿐 선거용 무개차를 들이댈 밭 이랑을 제대로 일궈내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도 태부족이다. 국민들은 3년 동안 계속된 '해방전쟁'에 염증까지 내고 있다. 그러니 물불 안 가리고 "갈아엎을 쟁기는 유시민뿐"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유시민 때문에 표 떨어진다는 소리도 못 들었나"라는 일부 내부저항은 그저 하수(下手)로 보일 뿐이다. 국가 백년대계가 걱정스러운 것도 바로 이점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복지정책이 드디어 정치영역의 제물로 새로운 주방장 칼끝에 숨을 헐떡이게 됐다는 점이다. 탈(脫)군부 민주화 이후 집권한 정권의 연장선상에 선 노무현 정부의 개발독재에 대한 염증은 증오심에 가까울 정도라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 같은 이는 노무현 정부가 '부친살해(patricide)정치'를 벌이고 있다는 극단적 용어사용을 서슴지 않는다. "386 진보주의자들은 반공독재와 개발독재 군부독재 등 권위주의를 척결한다는 명분하에 부친세대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개척해놓은 '자유(自由)가치'까지 살해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진보주의자들은 부친살해 정치와 더불어 재벌,서울,강남,서울대,언론 등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에게서 그 막강한 힘과 지위를 빼앗아 사회적 약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정의'라며 '기득권 해체 정치'를 벌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개발독재'라는 단어 속에는 정부가 '큰' 역할을 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따라서 개발독재를 증오하는 사람들은 독재적 요소가 내재돼 있는 '큰 정부(big brother)'를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로 바꾸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봄 직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진보주의자들은 '큰 정부-작은 시장 ' 모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한껏 즐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던져주고 있을 정도다. 그 결과 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할 사회 경제 문화 등 영역까지 정부가 '관리'하는 '정부 식민지'로 변모됐다는 게 박 교수의 또 다른 주장이다. 유시민 카드는 이 같은 '복지영역 식민지화'를 통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지름길을 만들고 동시에 득표 극대화를 도모하는 정권연장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많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계몽적 역할을 자임하고 시민개인이나 사회집단들에 대해 설교하며 간섭하는 '권위'를 행사해왔을 뿐 아니라,특히 복지에 대해서는 '주체할 수 없는 부(富)와 그 반대에 서 있는 가난'이라는 대칭구도를 부각시켜 스스로를 위한 정치적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유시민 카드가 갖는 유해성은 '유시민 엔진'까지 단 '복지 지렛대'가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 복지부문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여놓았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이 "후대를 고려하지 않은 나이든 세대의 사기극"으로 몰리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와 유시민 복지장관 등장 사이에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biyang@sejong.ac.kr

    ADVERTISEMENT

    1. 1

      [아르떼 칼럼] 지금 화가 신사임당에 주목하는 이유

      최근 한국 미술계는 여성 작가와 전통 미술을 다시 읽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리움미술관은 여성 작가들의 실험성과 조형 언어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잇달아 선보였다. 2025년 9월부터 연 이불의 대규모 개인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환기시켰다. 또한 호암미술관에서 3월부터 개최될 예정인 원로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은 한 작가의 70년 예술 여정을 조망하는 자리다. 이런 전시들은 단순히 ‘여성 작가를 조명한다’는 차원을 넘어 미술사 서술의 관점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읽힌다.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신사임당을 다시 호명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는 오랫동안 ‘현모양처’라는 상징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최근의 미술사적 관심은 그를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화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한국 미술의 위상은 작품의 질보다 그것을 읽어내는 해석의 밀도에서 갈린다. 우리는 고미술을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다뤄왔지만, 동시대 미술 담론 속에서 작동하는 언어로 전환하는 데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신사임당을 다시 읽는 작업은 한국 고미술을 미적 감상의 대상에서 조형적 사유와 시장적 잠재력을 지닌 자산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신사임당의 ‘묵포도도’는 단순한 소재 재현이 아니다. 윤곽선을 배제하고 먹의 농담과 번짐만으로 포도송이의 체적, 껍질의 긴장, 덩굴의 방향성을 조직한다. 이는 구조와 기운을 동시에 포착하려는 동아시아 회화 인식이 응축된 사례다. 화면 하단에서 상단으로 이어지는 덩굴의 흐름은 평면에 암묵적 공간을 형성한다.‘초충도’ 또한 자연 관찰의 기록을 넘어선 시각적 편집의 결과다. 수박 오이

    2. 2

      [천자칼럼] 신조어 제조기 월가

      미국 월가의 경쟁력 중 하나가 신조어와 약어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능력이다. 입에 착 감기는 맛깔난 용어를 통해 복잡한 시장 상황, 기술 변천, 자금 이동 경로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2000년대 초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4개 신흥국을 지칭하는 브릭스(BRICs), 2000년대 후반 재정 위기에 휘말린 남유럽 5개국 피그스(PIIGS), 2010년대 미국 금리 인상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한 신흥 5개국을 가리키는 프래자일파이브(Fragile Five) 등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의 엘리트 경제학자들이 작명했다.월가 신조어가 집중된 분야는 물론 증시 주도주다. 미국 7대 빅테크(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를 묶은 말이 ‘매그니피센트7’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한 투자전략가가 1960년대 서부영화 ‘황야의 7인’에서 따왔다. 매그니피센트 7개 기업의 첫 글자 ATMMAAN에 브로드컴을 포함한 8대 대형 기술주가 배트맨(BATMMAAN)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작년에는 과격한 관세 폭탄 발언 뒤에 결국은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패턴을 역이용해 단기 수익을 노리는 ‘TACO(Trump Always Chicken Out) 트레이드’가 최고 유행어였다. 인공지능(AI)을 빼놓고 증시 트렌드를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한 지금, 새롭게 등장한 월가 테마주 이름이 ‘헤일로(HALO) 트레이드’다. Heavy Assets, Low Obsolescence의 약자로, 막대한 자본 투자에 따른 높은 진입 장벽으로 진부화, 곧 도태 위험은 낮은 산업군을 뜻한다. 인프라, 전력망, 철도, 에너지, 중장비 등 실물 자산에 기반한 업종이다. 챗GPT나 제미나이가 소프트웨어 기업은 파괴할 수 있어도, 전기를 생산하거나 직접 땅을 파는 일

    3. 3

      [사설] 훼손된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노사협상으로 날 샐 판

      지난 15년간 노사 간 교섭의 기본 틀로 기능해온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이 크게 훼손됐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란봉투법 시행(3월 10일)을 불과 열흘가량 앞둔 어제 발표한 ‘교섭 절차 매뉴얼’에서 “원·하청 노조 간 단일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적시했다.매뉴얼대로면 원청 사업자는 원청 대표노조와 하청 대표노조 등 최소 2개 이상 노조와의 교섭이 의무화된다. 복수 노조가 허용된 2011년 이후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명시하도록 한 노동조합법에 배치된다. 하위 법령으로 상위 법인 노조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법의 위임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작년 9월 노란봉투법 입법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 철폐’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거대 노조를 막판에 일방적으로 편든 모양새다.지난 23일 시행령과 해석지침 최종 발표 때까지만 해도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유지했으나 불과 나흘 만에 뒤집은 것도 논란 거리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는 진짜 사장과 교섭하고 싶어 하며 교섭 분리로 입법의 취지를 더 잘 살릴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공감하기 어렵다. 하청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려면 원청노동자까지 포함한 교섭창구 단일화가 필요하다던 종전 입장을 바꿀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이대로라면 원청 사업자는 수십·수백 개 노조와 무제한 교섭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노조 입장에서는 근로조건·고용 형태가 비슷한 하청노조끼리 연대하는 등 다양한 교섭 전략 구사가 가능해졌다. 앞서 시행령 등에선 ‘하청노조 간 이해관계의 공통성’과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