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무역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000억달러를 돌파했다. APEC 정상회의에서는 우리의 IT기술을 전 세계에 마음껏 과시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현대자동차를 두려워하고 있고 일본 도요타자동차조차도 미래 경쟁자로 현대자동차를 꼽고 있다. 이런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다. 최근 출간된 '길이 없으면 길을 닦아라'(음용기·장우주 외 지음,이야기꽃)는 우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그야말로 목숨을 바쳐 일해 온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다. 70~8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끈 주체는 종합무역상사였고 그 중에서도 중화학 분야의 수출을 선도해온 것은 현대종합상사였다. 이 책은 이 회사의 전직 CEO와 직원들이 체험한 생생한 '시장개척 전투사'를 기록한 것이다. 오직 수출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수출전사들의 가슴 뭉클한 감동스토리가 있는가 하면 기발한 협상전략에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제1장 '세계시장 개척의 문을 열다'와 제2장 '세상을 누비다'에는 초창기 시장 개척기가 실려 있고 제3장 '정주영을 다시 기억하다'에는 현대그룹을 이끌었던 경제거목 정주영 회장의 포부와 경영스타일,그리고 불 같은 성격과 부하에 대한 애틋한 정까지 실려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아프리카 오지,열사의 중동,동토의 시베리아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를 가지고 도전했다. 소련 시장을 개척할 때 정주영 회장은 러시아 총리를 지냈던 프리마코프와 협상하면서 자신을 '한국에서 온 프롤레타리아'라고 소개했다. 통역까지 헷갈렸고 상대방도 어리둥절했다. '나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소학교밖에 나오지 않아서 동창생들이 없다. 그리고 노동으로 돈을 벌었으니 나보다 프롤레타리아로서 더 성분이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는 말에 상대방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나이지리아 교통부 차관의 방한을 주선하던 현지 지사장은 지사에 선물용으로 가지고 있던 홍삼을 이용해서 삼계탕을 만들어 접대하는 아이디어를 발휘하기도 했다. 북예멘 광구의 마리브 유전 개발은 단 1%의 가능성에 도전한 사업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며 국가 간 수교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당시 공산국가이던 소련과 동구권,베트남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오직 도전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이 벌어들인 달러,그들의 고귀한 체험,그들의 청춘이 토양이 되어 오늘날 우리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진보니 보수니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이 책을 보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새 나약해진 젊은 비즈니스맨들도 읽었으면 한다. 또 한국사회와 한국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이 책에서 한국인의 끈질긴 개척 정신과 도전정신의 유전인자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관련 서적은 재미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최소한 '7080콘서트'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44쪽,1만원.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