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쇼크] 헤지펀드 유입설에 기업들도 달러 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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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8년여 만의 최저치인 달러당 987원30전까지 떨어진 5일 서울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개장 직전만 해도 환율이 다시 1000원 선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세자릿수로 떨어졌으니 반발 매수가 어느 정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였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개장과 동시에 무너졌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이날도 대규모 매도 공세를 이어갔고 자동차 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내다팔았다.
반면 정유사 등 수입업체들이 달러화 매입 시점을 뒤로 미뤄 매수세는 바닥을 보였다.
게다가 대규모 역외 헤지펀드가 유입됐다는 설이 나돌자 국내 기업들이 '패닉 셀(panic sell·무조건적 매도)' 양상까지 보이며 장 막판에는 985원10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995원 선 놓고 1차 공방
원·달러 환율은 이날 개장과 동시에 수직 하락,오전 한때 992원 선까지 밀렸다.
전날 환율 급락에 따른 반발 매수와 외환당국의 시장개입 가능성 등을 이유로 반등을 점쳤던 일부 외환 전문가들의 관측이 여지없이 무너진 셈이다.
환율 하락은 해외 투자은행 등 역외 세력이 주도했다.
이들은 지난 2일 이후 나흘 연속 달러화를 내다팔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시내 모처에서 만나 외환시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소식은 당국이 강력한 개입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을 낳으면서 한동안 995원 선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실제 이날 오전 외환시장에서는 한 공기업이 2억달러가량을 매수,환율을 잠깐 끌어올리기도 했다.
◆헤지펀드 유입설에 투매
환율은 오후 들어 급락세를 연출했다.
시장에 '대규모 역외 헤지펀드 유입설'이 확산된 영향이 컸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대규모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은행을 통해 대규모 달러화 매도 주문을 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역외 세력들이 계속 '셀(팔자)'을 외치고 있다"며 "이렇게 역외 세력의 힘이 강한 상황에서는 외환당국의 개입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은행권 딜러도 "당국의 개입이 들어와도 환율이 쉽사리 반등하지 못하는 것은 역외 세력 때문"이라며 "이제 시장은 당국과 역외 세력 간의 힘겨루기로 좁혀졌고 나머지 주체(국내 은행과 기업)는 힘이 강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일단 역외 세력의 매도세가 당국의 매수세를 누른 것으로 평가했다.
한 은행권 딜러는 "평소 외환당국이 강조하던 '스무딩 오퍼레이션(속도 조절)'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하루였다"며 "외환당국은 환율 하락을 막을 의지와 능력 모두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950원까지 단숨에 밀릴 수도
환율이 연일 급락세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외환시장이 제 기능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인우 도쿄미쓰비시은행 팀장은 "외환당국이 개입의 효과를 고려해 완급을 조절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최근 며칠간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일단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989원(지난해 장중 최저치) 선이 깨진 만큼 기업들의 불안 심리가 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환율은 950원 선까지도 빠르게 밀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