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솔 감독의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는 통념상 '비겁한' 행동들이 정당화된다.


등장인물들은 상대방의 눈에 흙을 뿌리거나 교실 탁자와 의자를 집어던진다.술병을 깨 좌중을 겁주기도 한다.싸움에선 무조건 이기면 된다는 명제가 전편을 지배한다.


'싸움의 기술'이라는 제목이 붙었는 데 화려하고 멋진 액션이 없는 것도 특이하다. 우리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폭력의 양상만 비친다.


이야기는 날마다 학교에서 급우들에게 매를 맞는 고교생이 싸움의 고수를 찾아가 수련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극 중 내내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절정부에 이르러서야 두려움을 극복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샘 페킨파 감독의 걸작 '어둠의 표적'(원제 '지푸라기 개 1971')처럼 무기력한 남성이 폭력을 통해 구원받는 내용이다. 두 영화에서 관객들은 나약한 주인공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된다. 두려움 때문에 폭력에 대항하지 못했던 경험이 극 중 주인공에게 연민을 갖게 한다.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동전으로 인중 맞추기,빨래짜기로 상체 근력 키우기,세탁물 밟기로 하체 근력 강화하기 등 주인공의 각종 수련법이다. '그럴 듯하게' 술병을 깨는 심리전이나 상대의 급소를 가격하는 공격술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눈요깃거리에만 집착한 나머지 극적 구성이 빈약해졌다. 주인공이 느끼는 갈등의 골은 깊지 않다.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는 두려움의 실체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다. 때문에 관객을 대변하는 주인공 캐릭터가 경험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좁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코믹드라마를 표방한 영화답지 않게 유머의 강도도 약하다.


다만 고교생 주인공역 재희나 '싸움의 달인' 백윤식의 연기는 무난하다. 재희는 폭력 앞에 나약해지는 인간 심리를 무리없이 소화해 냈다. 백윤식도 '범죄의 재구성'의 사기꾼역에 이어 속내를 측정하기 어려운 인물을 잘 구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 하며 야릇한 매력을 발산한다.


5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