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세계 정보기술(IT) 업계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델컴퓨터의 수석 부사장이 경쟁업체인 중국 레노버의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IBM 이미지에 의존하던 레노버가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겠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또 아시아지역에서 델의 파워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관측으로 이어져 주목된다. 레노버는 지난 5월 IBM PC사업부 인수 이후 본사를 베이징에서 뉴욕주 펄처스로 옮겼다. IBM 본사가 있는 웨스터체스터 카운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또 IBM PC사업부 대표를 지낸 스티븐 워드를 레노버 CEO로 영입했다. 그리고는 "미국 소비자들과 기업 구매담당자들이 영원히 싱크패드(IBM 노트북 브랜드)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싱크패드의 명성을 만든 사람들이 여전히 요직에 있다"고 강조했다. 레노버는 IBM 시절 그대로라는 얘기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작년 12월20일 워드가 CEO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델의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맡고 있는 윌리엄 아멜리오 수석 부사장을 영입했다. IBM 시절부터 일하던 베테랑과 신진 영입인사들을 잘 조화시켜 시너지를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편 델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아멜리오를 바로 스카우트했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에서 레노보와 델의 한판 대결이 불꽃을 튀길 전망이다. 커런트어낼러시스(PC 컨설팅업체)의 애널리스트인 샘 바브나니는 "다른 팀의 에이스 투수를 데려온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또 "아멜리오가 은퇴한 게 아니라 최대 경쟁업체로 갔기 때문에 델로서는 명백한 손실"이라고 분석했다. 델은 최근 6개월간 아멜리오와 또 한명의 부사장이 아시아사업을 함께 총괄토록 했기 때문에 그의 전직이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애써 자위했다. 하지만 델의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델은 지난 5월 미국의 한 영업직원이 이메일에 "레노버를 사면 베이징(중국 정부)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썼다가 엄청난 설화에 휘말렸다. 이후 중국 내 판매가 급감했고 아시아·태평양지역 점유율도 7.8%로 1%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멜리오마저 떠났으니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