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신뢰의 소중함을 되새기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복원된 청계천 변을 산책하는 맛이 비길 데 없이 시원하고 짜릿하다.
세종로에 이어진 청계광장에서 고산자교를 지나 멀리 버들습지까지 복원된 거리만도 줄잡아 5km가 넘는다.
청계광장 근처의 골목 안에 있는 소문난 국밥집을 찾아가 점심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서,설렁설렁 걸어 동대문 패션광장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거리만 따져도 얼추 5km가 넘겠으니 점심 이후의 산책으로는 그보다 더 운치 있는 또 다른 무엇을 찾기 어렵다.
장충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는 점심 시간에 조금의 말미가 났다 싶으면 청계광장 근처에 있는 국밥집을 찾는다.
자리 잡기가 어려운 그 식당에서 점심 먹고 청계천 산책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어쩐 셈인지 그날 할 일들을 모두 다 치러낸 듯한 착각에 빠진다.
때로는 번개같이 지나는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그리운 시골의 고향을 다녀온 듯하다.
산책길 내내 귓가를 간질이는 여울물 소리를 서울 한복판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찌릿한 행복인가.
흐르는 물소리,징검다리,물결 따라 흐느적거리는 수초,물결 속에 잠겨 있는 자갈돌과 맑은 모래들,솟아오르는 분수들,천변의 잡초들….공해에 찌들고 지친 우리들이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지닌 희망일 것이고 가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잠시 짬을 내어 이 청계천을 산책하였다.
청계광장을 지나서 한동안 걷다가 맞은편 쪽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바라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가슴 뭉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20여명으로 보이는 남녀 대학생들이 서로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면,한 사람이 제 각기 다른 한 사람의 두 손을 이끌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상대가 이끄는 대로 조심스럽게 한 발짝 한 발짝을 떼어놓으며 매우 힘겹게 건너는 사람들은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어쩌면 장난기 있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지금 장애인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 젊은이들이 벌이고 있는 장애인 체험 프로그램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신뢰감이란 정체에 대한 우리들 스스로의 거리가 어디까지 맞닿아 있는 것인지 시험하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맹인 체험과정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눈을 뜨고 있는 상대의 유도를 따라 징검다리를 건너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측과 측정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한 발짝을 떼어놓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 그들은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애정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사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의 유도에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기까지 더 많은 확신과 믿음을 시험당해야 한다는 것을 그 장애인 체험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각과 모습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든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원인들이 있고,원인이 있는 만치 그것의 가치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가치 있는 것이고,무턱대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란 것을 청계천 복원이 증명해 보여 주었듯이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감이란 것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물리적 실체로서의 증명이 가능하다면,한 줌도 안 될 그 신뢰감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는 데도 수많은 우여곡절과 자기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새해 아침에는 무슨 거창한 포부도 좋지만,바로 이런 신뢰의 소중함에 대해 차분히 한 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