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르르르,툭 투둑툭…치르르르,툭 투둑툭…."


해발 6700m의 제산다반(界山大坂)을 오르기로 한 날 아침,차 소리가 이상하다.


둬마(多瑪) 빙잔(兵站) 마당에 세워둔 4대의 탐험대 차량 가운데 휘발유 차를 제외한 디젤차 3대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다시 시동을 걸어보지만 차는 '부르르릉' 하는 힘찬 소리를 내지 못하고 꺼져버린다.


자동차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기네스 신기록을 세우기로 한 날,이 무슨 불길한 징조일까.


이유를 알고 보니 인재(人災)다.


밤이면 영하 20도 밑으로 떨어지는 이곳의 추위를 감안해 얼지 않는 디젤유를 어떻게든 구해서 넣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대책회의를 해 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오전 9시.라싸에서부터 동행하고 있는 리위안 중국 국제체육여유공사 총경리 일행이 뒤늦게 사태를 접하고 분주해졌다.


둬마 빙잔의 연료담당 장교까지 동원돼 부동연료 조달책을 내놓았다.


그 방법이란 부대 앞 식당에서 특제 연료를 사는 것.식당 뒤편에서부터 굴려온 30kg짜리 기름통은 국방색에 군용마크가 선명한 데다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팔지만 그나마 구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기름을 넣고 나니 시간은 벌써 11시50분.둬마에서 빠져나와 다시 신장(新疆)과 시짱(西藏)을 잇는 '신짱궁루(新藏公路)'를 탄다.


신짱궁루는 티베트의 라싸에서 신장의 예청(葉城)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3100km의 '219번 국도'.둬마를 지나면서부터 거대한 쿤룬(崑崙)산맥의 10개 설산을 넘어야 하는 험로 중의 험로다.


해발 4000m 이상 구간이 915km,5000m 이상 노선만 130km에 이르는,세계 최고지(最高地)의 도로다.



[ 사진 : 신장웨이얼자치구 지역의 다훙료탄(大紅柳灘)에서 예청(葉城)으로 가는 길에 마자(馬札)대판을 넘은 탐험대 차량이 실타래처럼 지그재그로 구부러진 길을 내려가고 있다.티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설산,황량한 길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중국 정부가 이 험한 지역에 길을 낸 것은 군사적 중요성 때문이다.


인도 네팔 등과 접하고 있는 티베트 서쪽 아리(阿里)지구 군부대로 물자를 수송하려면 라싸보다 신장쪽에서 오는 게 빠르다는 얘기다.


둬마를 벗어나자 곧장 고도는 5000m를 넘어선다.


이 지역의 평균 고도가 4600m 이상이라 5000m를 넘는 고개도 작은 산언덕에 불과하다.


길 옆 개울은 꽁꽁 얼었고,마른 풀 위에서 뛰노는 황양 무리가 몇 차례나 출몰한다.


사람이라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생명체를 만난 것이 반갑기만 하다.


둬마에서 114km쯤 달렸을 무렵,5380m의 고개를 하나 넘고 조금 더 가자 자그마한 산언덕 길 한 쪽에 커다란 표지석 하나가 들어온다.


'區界碑(구계비) 海拔(해발) 6700m'.신장웨이우얼(維吾爾)자치구와 시짱자치구의 경계라며 검은 색 대리석에 붉은 색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새겨놓은 글씨다.


방금 5380m 고개를 넘었는데 여기가 6700m라니….


GPS고도계로는 5217m인데 여기가 신짱궁루에서 가장 높은 고개라니….다들 제 눈을 의심하며 차를 산꼭대기까지 몰고 가서 재 봐도 5280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티베트인 안내원은 여기가 제산다반이라고 거듭 확언한다.


'구계비'의 뒷면에는 219번 국도의 신짱궁루 및 경유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최고 해발이 6700m"라고 명시해놓았다.


더구나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원회의 명령에 의해 이 노선을 관리하게 된 무장경찰대가 2005년 7월1일에 세웠다고까지 표시해 놓았으니 어떻게 된 일일까.


인터넷의 티베트 전문 여행사 사이트에도,중국에서 펴낸 안내서에도 제산다반은 6700m라고 돼 있건만….


결국 자동차로 세계 최고지에 오르려던 계획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고 말았다.


기네스 신기록을 세운 다음 현장에서 위성장비로 기사와 사진을 송고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아,이 허탈감과 민망함! 실상을 확인한 것으로 허탈감을 달래며 표지석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이다.


티베트를 벗어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들어서서도 길은 황량하다.


수십km를 가도 사람 하나 집 한 채 보이지 않고 티베트의 일상 풍경인 양떼도,야크도,야생 황양도 없다.


길과 함께 가는 것은 통신·전기선과 전신주 뿐이다.


길 옆 민둥산은 색깔이 울긋불긋한 데다 여인네 가슴처럼 봉긋한가 하면 다섯 봉우리가 한 데 모여 오봉산 모양을 내는 등 갖은 조화를 부리며 기묘한 형상을 연출한다.


다행스러운 건 제산다반에서 신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이전보다 크게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여차하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고 사고난 자동차의 잔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던 최악의 노선이 크게 정비돼 비교적 안전해졌다.


그래도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기란 쉽지 않다.


반대편 산 아래에서 짐을 잔뜩 싣고 낑낑대며 올라오는 트럭들은 보기에도 아찔하다.


산을 다 내려와 신장의 첫 숙박지인 다훙류탄(大紅柳灘)에 도착하니 저녁 8시20분.전날에 이어 인민군 부대 막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산길에 도전한다.


다훙류탄부터 예청까지는 480km 구간 중 280km가 군사지역이라 사진을 찍지 말라고 중국인들은 신신당부한다.


해발 5000m급의 헤이카대판과 마자대판,3000m급의 쿠디대판을 넘어서는 길은 지그재그의 가파른 굽이길이다.


이런 험한 곳을 일부러 골라 자전거 트레킹을 즐기는 서양사람을 보니 그 도전 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쿠디의 공안검사참(公安檢査站)에서 여권검사를 한 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얼굴이 길쭉하고 높은 코에 턱수염을 기른 웨이우얼족이나 하사커족으로 바뀌었고,야크 대신 당나귀 수레가 거리를 누빈다.


험준한 쿤룬산맥은 서서히 모래언덕으로 낮아졌고 멀리서 유정(油井)의 불꽃들이 사막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


신장의 첫 도시 예청이 눈앞에 있다.


예청(신장)=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