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세계인들은 한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우리 스스로 평가하듯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회원국의 일원으로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고,IT분야에서 앞서가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생각만큼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 당장 '한국에 대해 어떤 나라로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시위 잘하는 나라'쯤으로 답하지 않을지 솔직히 걱정스럽기도 하다. 홍콩에서의 과격시위가 세계적인 뉴스로 주목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물건을 살 때 맨 먼저 따져보는 것이 브랜드다. 유명 브랜드는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도 믿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가브랜드도 마찬가지다. 평판이 좋으면 덩달아 기업이미지도 높아지고 한국상품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시위 잘하는 나라쯤으로 알려져선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은 뻔한 이치다. 국가브랜드가 제대로 형성되려면 경제력만 가지곤 안된다.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사회에 걸맞은 질서가 형성되고 특히 세계화 시대에는 적극적인 대외 원조사업 등 국제협력활동이 가장 기초적인 국력의 밑바탕이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이달 초 군인력개발에 대해 민간과의 협력강화를 주요사업으로 삼고 있는 산ㆍ군인적자원개발위원회의 일원으로 자이툰부대를 시찰하는 기회가 있었다. 현장에서 목격한 자이툰 부대의 활약은 파병의 당위성 여부를 떠나 누가 뭐래도 국력의 기초를 묵묵히 다지고 있는,그래서 국가브랜드를 드높이는 전사들이 아닌가 싶었다. 평화재건부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둔지인 아르빌 지역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면서 학교를 지어주고, 마을을 정비해 주는 이른바 '민사작전'은 아르빌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고쳐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처음엔 방관만 하던 주민들이 우리 장병들의 헌신적 노력 탓에 지금은 스스로 나서서 마을을 가꾸고 자원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르빌 주지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이툰은 아르빌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는 것. 현지 정부관료들은 한국기업의 진출이 봉쇄돼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부대 지휘관들의 조바심은 더욱 크다. 애써 일궈놓은 아르빌 지역에서의 '선진 한국'이라는 높은 성가(聲價)가 자칫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그 때문인지 하루빨리 기업들이 들어와 지역개발에 눈을 뜬 아르빌의 개발계획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정승조 사단장의 첫마디였다. 더구나 위험을 무릅쓰고 다져놓은 기반이기에 더욱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라크 석유매장량의 60% 이상이 아르빌을 비롯한 북부지역에 집중돼 있어 전략적 요충지역이라는 설명도 곁들여 진다. 전쟁지역에 파병하는 것 자체가 옳고 그르냐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추상적인 당위성이나 이념적 가치판단만으로 왈가왈부할 일은 결코 아니다. 국력의 신장은 명분에 집착한 개혁이나 정의만을 내세운다고 될 일도 아니다. 국가브랜드의 소중한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자이툰의 승리는 더욱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다. 세계적 개가로 평가받아온 줄기세포의 연구성과에 대해 진위논란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사학법을 둘러싸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길거리로 나섰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WTO 반대를 명분으로 해외 원정시위를 벌여 수백명이 체포되는 불상사를 일으켰다. 이런 어수선한 국내소식에 접한 자이툰의 전사들이 과연 어떤 생각에 잠길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