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연구만 하고 있었다면 좀이 쑤셔서 못 살았을 겁니다."


솔담엔터테인먼트의 장재철 대표(32)는 공연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일들만 골라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고집할 때 프랑스 영화나 소설에 원작을 두고 있는,국내에서는 한번도 무대에 올려진 적이 없는 뮤지컬을 들여왔다.


뮤지컬의 저작권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때 세계 곳곳을 돌며 한국에서의 뮤지컬 판권을 사들이는 데 열중했다.


그의 튀는 행동이 매출이라는 결실로 나타나자 젊은 공연 기획자의 존재가 공연계에 알려지게 됐다.


지난해 15억원 선이었던 회사 매출이 올해는 두 배 이상 늘어 3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출신 내력도 경영 스타일만큼이나 독특하다.


그는 공학도로서 포항공대 화학과 출신이다.


동료들과 엇비슷한 길을 걸었다면 실험실에서 시험관을 만지고 있어야 하지만 우연히 빠져들게 된 음악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대학 동아리 록밴드에서 보컬로 음악을 한 것이 '화근'이었어요.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화학책 쪽으로는 손이 안가더군요.


졸업 후 삼성물산에 입사해 6개월 정도 일했는데 음악이 생각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표를 내고 음반사를 기웃거리다 록그룹 시나위의 신대철씨와 연이 닿았어요.


결국 시나위의 '가방모찌'(짐꾼)로 음악계에 데뷔했지요."


장 대표는 시나위에 있는 동안 자신이 음악보다는 공연 기획 쪽에 더 적성이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가 내는 의견들이 시나위 공연에 전부 채택됐고 같이 일한 지 1년 정도가 지나자 시나위의 공연 제작을 총괄하게 됐다.


"시나위와 일을 하면서 공연기획도 음악만큼이나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음악보다는 기획 쪽이 밥벌이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뮤지컬 공연 기획으로 영역을 바꾸면서 장 대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먼저 장 대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300여편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뉴욕 MTI(Musical Theater International)의 아시아지역 에이전트로 등록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장악하려면 저작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웨스트사이드스토리,아가씨와건달들,지킬박사와하이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연하려면 장 대표에게 먼저 승낙을 맡아야 한다.


장 대표에게도 승승장구의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무대에 올렸던 뮤지컬 '댄스오브디자이어'는 흥행에 참패했다.


이때 날린 돈만 10억원에 달한다.


"처음에는 아찔하더라고요.


들어간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회수할 길은 막막하고.'젊은 놈이 설치더니 꼴 좋다'는 비웃음의 시선도 참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해보니 '대중이 좋아하는 공연은 이런 것이다'라는 감이 생기더라고요.


10억원의 수업료를 냈으니 그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최근 장 대표의 관심은 프랑스다.


브로드웨이의 눈치만 보다보면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추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작품을 찾다가 프랑스 작품에 주목하게 됐다.


이룸이엔티의 최남주 대표와 손잡고 내년 4월 공연을 시작하는 십계가 첫 번째 프랑스 작품이다.


하반기에는 뮤지컬로 제작된 적이 없는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 '8명의 여인들'을,2008년께에는 추리소설로만 알려져 있는 '루팡'을 각각 한국에 들여올 생각이다.


'8명의 여인들'과 '루팡'의 뮤지컬 판권은 완전한 장 대표의 소유.앞으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뮤지컬 제작자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장 대표에게 판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 관객들은 문화적 편식이 심해 브로드웨이 작품에만 길들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좀더 격식있고 품위있는 작품을 원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어요.


프랑스 작품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특유의 긴박감을 더해 '품위'와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면 승산이 있습니다."


장 대표는 한국이 뮤지컬 강국이 되려면 한국적인 것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물놀이를 공연에 응용한 난타는 한국 공연도 세계시장에서 먹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명작입니다.


하지만 길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등 제3국에서 소재를 발굴해도 한국인이 세계화 시키면 한국 작품이 됩니다.


영화에 비유하면 임권택 감독의 길만 있는게 아니고 박찬욱 감독의 길도 있는 것이지요."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