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고려대 수학교육과 박선미씨(21·여)는 아침 일찍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놓고 '스타벅스'에서 모닝 커피를 마셨다. '미니스톱'에서 구입한 생수를 간간이 마시면서 오전 내내 공부에 열중한 박씨는 점심을 '파파이스'에서 치킨 버거로 해결했다. 오후엔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네일숍'에서 손톱을 다듬고,집에 가기 전엔 스터디모임 동료들과 '맥주바'에서 가볍게 한 잔 했다. 등교 후 박씨는 교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커피전문점,편의점,패스트푸트점,네일숍,맥주바 등이 모두 다 학교 안에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 내 편의시설이 다양화·고급화되면서 취업준비 시험 공부 등으로 바쁜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주변 상인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특히 패션거리,유흥가,아파트촌 등을 끼고 있지 못해 외부 인구 유입이 적은 고려대 경희대 한국외대 등의 대학가는 학내 편의시설 확충이 곧바로 인근 상가의 매출 급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2년 고려대가 지하 3층 9000여평 규모로 조성한 '중앙광장'은 패스트푸드점,편의점,PC방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와 있는 복합몰로 학생들에겐 '고엑스(고대의 코엑스몰)'로 불린다. 연중 무휴인데다 업종별 유명 브랜드 매장으로만 구성돼 있어,재학생뿐 아니라 주변 쇼핑객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안암동에서 식당을 하는 오모씨는 "중앙광장이 생긴 뒤로 매년 매출이 30%씩 줄고 있다"며 "들어올 때 권리금의 절반이라도 낸다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가게를 넘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 주변도 상황은 비슷하다. 성균관대에는 10여 테이블 규모의 당구장이,한국외대에는 가스 버너를 갖춰 놓은 신당동식 즉석떡볶이집이 들어와 있다. 중앙대에선 학교 이름을 딴 'CAU 버거'가 인기고,경희대 수원캠퍼스엔 노래방에 만화가게까지 학내에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갈 일이 별로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반면,주변 상인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대학 내에 술집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02년 고려대에 맥주바가 생긴 데 이어,지난 9월에는 서울대에 '글로벌하우스'라는 호프집이 문을 열었다. 경희대 수원캠퍼스와 포항공대에선 교내 호프집이 들어선 지 오래다. 이에 따라 '대학가에서 밥집은 망해도 술집은 절대 안 망한다'는 말도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 서울대 입구역 근처 호프집 주인 박영호씨(57)는 "단체 손님이 확실히 줄었다"며 "학교에서 술까지 팔면 우린 뭘 먹고 살라는 얘기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대학가의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전문가들은 대학가에서 창업할 경우 해당 지역 상권 분석과 함께 대학 내에 어떤 시설이 들어와 있는지도 꼭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학 내 식당이 서구식단 위주일 땐 가정식 백반(이화여대앞),한식 중심이면 퓨전일식집(한국외대앞),스터디모임 공간이 부족할 땐 프레젠테이션 카페(한양대앞) 등 대학별 맞춤 창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외부 인구 유입이 적은 대학가 단일 상권의 경우 목표수익률을 낮게 잡아 투자금액을 최대한 줄이고 가격 민감 상품을 교내 매장보다 저가에 공급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