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새해 예산안 처리가 또다시 법정 시한을 넘길 것 같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감세법안과 종합부동산세제의 연계 처리를 제안했지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예산안 자체가 제대로 심의에도 못들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정말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이 무더기로 예산 증액을 요청하는 등 '민원성 예산 끼워넣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여당과 야당 모두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지역예산 확보에 급급하고 나라 살림은 안중(眼中)에도 없는 모습이다. 우리 헌법 54조 2항은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편성과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을 어기는 것은 국회가 당연히 지켜야할 책임을 방기(放棄)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예산안의 늑장처리는 곧바로 예산집행의 심각한 차질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산하기관,투자기관,출연기관 등의 연쇄적인 예산 심의가 지연되면서 결국 졸속심의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민의 막대한 혈세(血稅)부담을 초래하고 생활의 엄청난 불편과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여당과 야당은 지금 예산안을 놓고 정략적인 소모전만 일삼고 있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8ㆍ31대책의 후속 입법에만 파묻혀 야당의 감세(減稅)를 전제로 한 협상의 여지마저 없앤 여당의 태도나,감세를 주장하면서 개별 의원들의 선심성 예산증액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 모두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예산안이 결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고,그 수단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여야는 정쟁만 거듭할 게 아니라 더 꼼꼼히 예산안을 점검해 깎을 것은 깎고,하루빨리 예산안을 확정해줌으로써 정부가 내년 나라살림을 차질없이 준비하는데 전념토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야 간에 입장차가 크지만 절충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타협이 정치권의 할 일이라고 볼 때 더욱 그렇다. 따라서 새해 예산안은 늦어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서는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더 이상 예산안 처리를 볼모로 삼아 정쟁을 일삼거나 정치적 흥정을 시도하는 행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