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액정표시장치)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를 중심으로 한 디스플레이 전쟁은 이종격투기인 '프라이드'에 비유되고 있다.


프라이드는 입식 타격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K1'과 달리 맞아주면서 밀고 들어가는 맷집과 접근전의 완력도 중요하다.


디스플레이 전쟁에서는 프라이드처럼 손실을 감수하면서 상대가 먼저 나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전술이 중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패널 업체들은 디지털 TV 시장이 아직 성숙기에 진입하지 않았는 데도 생산 능력을 연간 50%씩 증강시키고 있다.


올해 전 세계 TV 시장 규모는 1억7000만대 정도.이 가운데 LCD TV가 차지하는 규모는 2000만대,PDP TV는 고작 600만대에 불과하다.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도 업계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디스플레이 경쟁이 디스플레이만으로 끝나지 않고 TV세트 경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최후의 승자가 되면 지금까지의 고생을 일거에 보상받을 수 있다.


일본 샤프와 파나소닉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1990년 세계 최초로 LCD를 양산하기 시작한 샤프는 오늘날 LCD TV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한때 50%를 넘나들던 시장 점유율이 지금은 20%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부동의 1위다.


2위인 필립스는 12%,3위 삼성전자는 10%에 머물고 있다.


일본에서 PDP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마쓰시타 역시 파나소닉이란 브랜드로 세계 PDP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PDP 전쟁에서 밀린 NEC 파이어니어 등은 TV 시장에서 10위권 밖으로 사라졌다.


◆삼성과 LG의 선도적 투자


2002년까지 일본은 LCD PDP 분야의 절대 강자였다.


LCD는 1990년 샤프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나 LG필립스LCD보다 무려 5년 빨랐다.


PDP도 한국보다 3년 빠른 1998년부터 마쓰시타 파이어니어 후지쓰 등이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일본 업계는 "한국이 우리를 따라오려면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기업들의 과감한 베팅을 간과했다.


첫 번째 고비는 1997년 말 찾아온 우리나라의 외환위기였다.


일본은 아시아 시장 전반의 수요 감소를 우려,예정돼 있던 3세대 LCD라인 투자를 유보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전에 장비를 들여온 삼성전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3세대 투자를 단행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삼성전자가 일본 업체를 제치고 대형 LCD에서 처음으로 1등에 오른 것.


두 번째 전환점은 2002년 5세대 라인 투자였다.


1999년 LCD 시장에 대만이 뛰어들자 시장에는 공급 과잉 우려가 확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LG필립스LCD가 먼저 치고 나왔다.


일본은 이 때도 망설이고 있었다.


한국이 '오버'한다며 은근히 걱정까지 해줬다.


하지만 일본은 2003년 들어 모든 시장의 주도권을 한국에 내줘야 했다.


대형은 물론 중·소형 LCD시장 1위 자리까지 넘겨주게 된 것이다.


삼성과 LG가 디지털TV 시장의 신흥 강자로 올라선 것도 이 즈음이었다.


◆치열해지는 양산 경쟁


일본은 힘겹게 TV부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한국에 계속 밀릴 경우 TV시장마저 잠식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일본은 이에 따라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LCD 부문 기술을 대만에 넘겨줬다.


대만 1위 업체인 AUO는 마쓰시타 후지쓰로부터 기술을 들여왔다.


2위 업체인 CMO도 히타치 후지쓰 기술을,3위 업체인 CPT는 마쓰시타와 기술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은 또 최근 샤프를 중심으로 LCD 진영을 재편,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후지쓰로부터 중·소형 LCD 부문까지 넘겨받은 샤프는 세계 최초 7.5세대 라인 투자 등을 통해 실지(失地) 회복을 다짐하고 있다.


PDP에서는 마쓰시타가 선봉을 맡고 있다.


PDP 3위 업체로 주저앉은 마쓰시타는 LG전자가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6면취(유리 한 장에서 42인치 6장 생산)를 적용하자 내년 8면취 도입 계획과 생산량 확대를 통해 1위 탈환을 노리고 있다.


대만은 LCD 부문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한 덩치 키우기,중국과의 '신(新) 국공 합작' 형태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2001년 한국과 대만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40.7%와 22.7%로 두 배가량 차이났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44.9% 대 44.2%로 턱밑까지 쫓아왔다.


조일훈·김형호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