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은 아인슈타인에서 시작되는 20세기 물리학의 역사에서 1940~50년대를 대표하는 이론물리학자다. 이 시기에 그는 재규격화를 통한 양자전기역학의 완성과 양자역학의 새로운 틀인 경로적분의 발견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업적을 이뤄내었다. 현재의 입자물리학자들은 첨단 가속기에서 나오는 여러 실험 결과들을 '재규격화한 게이지 이론을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사용해 푼 결과'와 비교하곤 한다. '천재-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제임스 글릭 지음,황혁기 옮김,승산)은 '카오스'를 썼던 저자가 파인만이 사망한 4년 후인 1992년에 완성한 것이다. 파인만이라는 매력적인 천재의 일대기를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물리학적 성과를 훌륭하게 묘사해냈다. 원서는 미국에서 출간된 후 평단의 수많은 찬사와 인기를 끌었는데 뒤늦게나마 번역본이 나와 반가울 따름이다. 이 책에는 물리학의 한 천재가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자세를 갖추어 가는지,그에 필요한 지식을 어떻게 습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지,물리학자로 성장해서는 어떤 궤적으로 그의 관심을 끄는 문제를 잡아내고 해결해 가는지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특히 동시대에 같은 문제를 다룬 여러 선후배 및 동료 물리학자들과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모습들이 그들의 문제 접근 태도와 방식,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탁월하게 그려져 있다. 비록 올바른 결과는 하나로 주어져 있지만 그 결과를 도출해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여기에는 그 문제를 다루는 과학자의 성격과 스타일이 반영되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천재 과학자들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파인만은 너무나 매력적인 인간이고 과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이란 존재가 뇌리에 각인되고 물리학의 매력에 끌려 대학교에 진학한 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라는 책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데 있어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태도는 과학자를 꿈꾸는 나에게 전혀 새로운 경지였다. 이 책에서도 방대하고 충실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파인만의 인간적인 약점을 포함한 모든 면모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되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긴 여운이 남는다. 내 자식이 천재 혹은 영재가 아닌가 하고 자식 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학부모들,자연현상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욕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매우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하며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792쪽,2만8000원. 현승준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