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의학사의 이단자들과 황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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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 < 문학평론가 >
1929년 독일의 젊은 수련의 베르너 포르스만은 심장 카테테르가 가능하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자신의 신체를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심장 카테테르란 가늘고 긴 관을 혈관을 통해 심장 속까지 찔러넣어 심혈관계의 혈압과 성분을 측정하는 심장병 검사를 말한다.
요즘 의학계에서는 상식이 돼버린 카테테르가 당시에는 몹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의학계에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포르스만은 간호사를 설득하고 병원 원장의 눈을 피해 모두가 낮잠 자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심장에 가늘고 긴 관을 64cm나 찔러 넣었다.
카테테르가 심장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불편함이나 불쾌감 혹은 고통은 전혀 없었다. 그는 간호사와 함께 급히 엑스선 촬영실로 달려갔다.
엑스선은 포르스만의 흉곽과 심장 그림자를 선명하고도 근사하게 잡아냈다. 거기에는 어깨에서 우심실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가는 카테테르가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인체를 대상으로 한 인류 최초의 심장 카테테르 시술이 성공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르스만은 곧 만만치 않은 현실과 부딪혔다.
대형 병원의 일급 연구자가 아닌 작은 병원의 일개 수련의는 기념비적인 발견을 시도조차 해선 안 된다는,터무니없지만 당시 독일에 엄연히 존재하던 불문율 때문이었다.
결국 포르스만은 환자를 진료하다가 아주 우연히 발견한, 전혀 의도치 못했던 결과라고 겸손하게 학계에 보고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심장 카테테르라는 시술 방법은 이렇게 해 심장학에 새로운 기원을 열었고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
27년이 흐른 1956년 어느날 퇴근 후 집 근처에서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던 포르스만은 집으로 급히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장거리 전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 속의 목소리는 포르스만이 그해의 노벨의학상을 수상하게 됐음을 축하했다.
19세기 이전까지 천연두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 전염병이었다.
서기 180년에 로마제국에서는 약 500만명이 한꺼번에 죽었다.
이 재앙으로 로마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18세기 베를린에서는 천연두에 걸린 다섯 살 이하 유아의 생존율이 2%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18세기 초 터키 주재 영국 대사의 아내였던 몬테규 부인은 터키에서 종두(種痘)를 하는 풍습을 발견했다.
이를 계속 추적하면서 연구를 거듭했던 그녀는 종두가 천연두를 물리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녀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으려면 천연두균을 사전에 인체에 넣어야 한다는 역발상을 온전하게 수용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식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1718년 3월 임상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후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와 천연두 예방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1980년 5월 세계보건기구는 인류가 이제 천연두에서 해방됐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이상은 올해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된 '의학사의 이단자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황우석 교수팀이 난자를 매매했고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의혹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연일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들처럼 의학사 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는 늘 보수적인 저항에 시달려 왔다.
황우석 교수팀도 마찬가지로 세상의 질시와 여러 가지 시비에 계속 노출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첨단 산업과의 연결고리로 인해 국가 간,의학자들 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 아닌가.
한국이 세계에 기여할,그리고 인류의 의학사에 큰 획을 긋는 일임이 분명할 이 숭고한 작업에도 뜻하지 않은 해프닝들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의학사의 발전에서 늘 있어왔던 이 같은 복병과 폄훼 공작에 황우석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래는 늘 혁신자들에 의해 찬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