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서울 명동에 있는 은행연합회 11층 집무실에서 신동혁 회장을 만난 시간은 유지창 산업은행총재를 차기 회장으로 선임한 회의가 열렸던 직후였다. 바로 전에 후임자가 선출된 데다 41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마감하는 '현직에서의 마지막 인터뷰'라는 점에서 처음엔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과 없이 은행원 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이내 평소의 편안하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의 은행사랑은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그동안 많이 성장했고,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10년 뒤에도 아주 중요하고 강한 금융회사로 남아있을 것"이란 게 신 회장이 펼친 은행론(銀行論)이다. ○대담=육동인 금융부장 ---------------------------------------------------------------- ◆은행원 생활만 40년을 넘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보람스러웠던 일과 아쉬웠던 일은 어떤 게 있나요. "연합회장 3년 동안 우리 은행이 선진 은행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는 점을 가장 보람되게 생각합니다. 힘들었던 점은 역시 외환위기 직후였던 지난 1998년 한일은행장 직무대행으로 옛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 과정에서 300명이 넘는 직원을 구조조정한 일이었습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데,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죠." ◆올해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려서 그런지 은행의 공공성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은행경영의 주요 목표가 된 요즘 은행의 사회적 책임 역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은행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환경이나 윤리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 성장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죠. 이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을 하려면 단기 업적주의에 치중한 경영환경을 조성해선 안됩니다. 좋은 실적을 올린 최고경영자(CEO)가 오랜 기간 선장으로서 키를 잡을 수 있도록 해줘야죠. 그래야 CEO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금융 주권을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은행연합회 회원사가 22개입니다. 이 가운데 외국인이 경영권을 갖고 있는 곳이 3개라면 아직 많은 숫자라고는 할 수 없지요. 외국인 지분율이 높다는 것이 우려스럽지만 CEO가 경영을 소신껏 할 수 있는 풍토는 조성돼 있습니다. 따라서 지분율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외국계 자본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토종 사모펀드 등이 활성화돼 국내 투자자들의 지분율이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정부나 사회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외국계 은행이 회원이 되면서 혹시 연합회 운영에 달라진 점은 없는지요. "아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시중은행장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데 외국인 행장들도 자유롭게 발언하고 협회 운영에 적극 협조해 주고 있습니다. 연합회 업무에 대한 관심도 많아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관치(官治)금융'에 대한 얘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 어떻습니까. "관치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관치가 작동한다면 인사와 영업부문 두 가지 영역일 겁니다. 인사부문은 관치로부터 거의 독립했다고 봅니다.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은행들이야 예외겠지만요. 영업측면에서도 금융자원 배분에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의 관치는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개발연대 시대에는 자금 조달의 루트가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은행의 자금을 산업계 발전을 위해 어떻게 배분하느냐(어느 회사에 은행돈을 빌려주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죠. 그러나 이제는 은행들이 서로 '우리 은행돈을 써주십시오'라며 달려드는 시대가 됐습니다. 개발연대 시대와 180도 달라진 변화죠. 자금 운용 방식이 이렇게 변하면서 관치가 끼어들 틈이 없어졌지요. 최근 들어 부동산담보대출 등 은행들의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감독이 이뤄지는 것은 관치라고 보기 힘듭니다. 감독 당국으로서는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대기업들이 은행을 소유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도 많습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문제는 대단히 복잡한 사안입니다. 다만 대기업들이 직접 은행을 경영하려면 사전에 충분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볼까요. 미국에는 산업자본이 은행업을 해도 된다,안 된다 하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산업자본이 쉽게 은행을 경영하지 못합니다. 금융 당국이 필요할 경우 은행을 소유하는 기업까지 강도높은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니까요. 기업으로서는 은행을 소유한다는 게 오히려 귀찮은 일이 되는 셈이죠. 우리도 이런 제도적인 뒷받침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은행들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지요. "가장 부족한 것이 리스크관리 능력입니다. 은행업의 역사가 선진국보다 짧아 신용평가 역량이 떨어지는 데서 오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첨단제품'을 생산해 내는 능력도 아직 부족합니다. 금융공학을 활용해 복합 금융상품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첨단 금융공학의 전문가 그룹을 양성해야 하는 이유죠. 다행히 최근 이런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금융대학도 개설되고 은행들이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화된 인력 양성에 힘을 쏟는 추세입니다."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을 주도하기도 했는데 합병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행 간 합병은 비슷한 규모의 은행이 동등한 자격으로 합병하는 대등합병과 큰 은행이 작은 은행을 흡수하는 방식의 흡수합병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등합병보다는 흡수합병 방식이 우리 금융풍토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더 빨리 난다고 봅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통합 이후의 시너지 효과를 단기간에 내려면 큰 은행이 작은 은행을 흡수통합하는 방식이 효율적일 것입니다." ◆은행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다 얘기하면 책으로 몇 권 분량이 나올 겁니다. 다만 늘 후배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는데,그건 은행원도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은행원도 남들보다 잘하는 특기를 한 가지 이상은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합니다. 꾸준한 자기계발로 자신만의 특기를 살리는 게 어떻게 보면 느린 것 같지만,성공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지요." ◆퇴임 후 계획한 일이 있으신지요. "저는 외환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직접 은행 통합작업도 해봤고,옛 한미은행장으로서 칼라일펀드를 통한 외자유치 작업도 해봤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저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닌가 합니다. 지나치게 이론적이지도 않고,자서전을 쓰는 것처럼 너무 거창하지도 않은 그냥 저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줄 수 있는 책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정리=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사진=양윤모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