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서부 極地 2만km 대장정] (5) "오체투지 고행은 행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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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30분 티베트 라싸의 상징인 포탈라궁에서 동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조캉사원(大昭寺) 인근 대로변.
아직 어둠에 잠긴 노상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감자가 가득 담긴 수십 개의 부대를 죽 늘어놓은 채 감자 주인과 새벽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감자를 사고 파느라 왁자지껄하다.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은 들저울에 감자를 달고 흥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옆에는 대파를 무더기로 쌓아놓고 파는 사람도 있다.
어딜 가나 이렇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 사진 : 티베트 라싸의 조캉사원 주위를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돌고 있는 티베트 스님.누가 뭐라든,옆에서 사진을 찍든 말든 오직 절과 기도에 열중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행색은 초라하지만 깊고 고요한 눈이 인상적이다.]
라싸는 베이징보다 한참 서쪽에 있는 데도 같은 시각을 쓰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이른 시간이다.
상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뒤로한 채 조캉사원 쪽 골목으로 접어들자 역시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인다.
마니차를 돌리며 조캉사원으로 향하는 이들이다.
입으로는 '옴마니반메훔'을 끊임없이 외우면서 사원을 향해 잰걸음을 놓는다.
다른 사람들의 잰걸음과는 달리 세 걸음 걷고 한 번씩 몸을 땅에 붙이는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가는 사람도 여럿이다.
조캉사원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불어나 인파를 형성한다.
드디어 조캉사원 앞.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벌써 가득 모였다.
남녀노소 골고루 섞였다.
젊은 사람들은 제법 추운 날씨인 데도 반팔 차림이다.
마니차를 돌리며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사원 앞 광장은 금세 인산인해를 이룬다.
막 사원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미리 준비해왔거나 장사꾼에게 산 '샹'(향초·香草)을 사원 정면 양쪽의 '주니퍼'(향로)에 던져 넣으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그리고 풍년을 기원한다.
장사꾼들이 파는 '샹'은 한 봉지에 1위안.날이 샐 즈음에는 거의 동이 난다.
탐험대원들도 '샹'을 한 봉지씩 태우며 온 세상에 자비광명이 충만하기를 기원했다.
조캉사원 입구와 앞마당에는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대오를 이뤄 오체투지에 열중하고 있다.
방금 도착한 30대 여성이 어떻게 오체투지를 하는지 살펴보자.먼저 조캉사원 창틀에서 짤막한 솔을 가져와 바닥을 쓴 다음 오체투지용으로 만든 기다란 깔판을 깐다.
휴대전화를 꺼 가방에 넣은 뒤 신발을 벗고 깔판에 올라선다.
팔목에 염주를 낀 채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합장·기도한 뒤 오체투지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하던 오체투지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어느새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일어서 합장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벽 공기를 가른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렇게 조캉사원에 몰려드는 것일까.
포탈라궁이 달라이라마가 상주했던 궁전으로서 관광지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조캉사원은 살아 숨쉬는 신앙의 터전이요 중심이기 때문이다.
라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조캉사원이 처음 지어진 것은 서기 647년.당 태종의 양녀로서 토번국왕 송첸캄포에게 시집온 문성공주와 관련이 있다.
티베트의 토번 왕국이 라싸로 천도한 초기 각지에서 재앙이 끊이지 않자 천문과 음양오행에 밝았던 문성공주는 그 원인이 토번국의 지형에 있다고 판단했다.
토번국의 지형이 드러누워 있는 나찰녀의 모습인데 훙산(紅山) 남동쪽의 연못이 나찰녀의 심장이요 물은 그녀의 피라는 것.따라서 못을 메우고 사원을 지으면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문성공주는 제안했다.
이에 따라 송첸캄포는 흰 산양들에게 흙을 나르게 해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지역을 '산양의 땅'이라는 뜻의 '라싸'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후 '석가모니의 전당'이라는 뜻을 지닌 조캉사원은 라싸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라싸의 옛 성이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형성됐을 뿐만 아니라 전 티베트인들의 신앙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된 것.티베트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 이상은 조캉사원을 참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다.
라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챠체'라고 부르는 오체투지를 하며 짧게는 몇 달,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는 길을 달려와 조캉사원을 참배한다.
요즘에는 차로 와서 오체투지를 하기도 한다.
티베트 북부의 나취(那曲)에서 왔다는 초고무씨(37·여)는 "나취에서 차를 타고 사흘 만에 왔다"며 "오체투지를 하면서 불교가 세계 각지로 전파되기를 빌고 가족들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내세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했다.
라싸에 온 지 8년이 넘었다는 짜시쯔던군(16)은 오체투지의 '전문가'이다.
그는 "조캉사원에 참배하러 왔던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어머니만 집에 있다"며 "매일 오체투지를 하며 조캉사원 주위를 돌고 있다"고 말했다.
짜시쯔던군은 오체투지를 하면서 신자나 관광객들이 주는 돈을 받아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고 있다고 했다.
"오체투지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 아닌가"하고 오해했던 그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조캉사원 입구에서 사원을 둘러싼 원형 도로인 바코르가에 접어들자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 신자들이 행렬을 이룬다.
바코르가 좌우에는 마니차와 탕카(佛畵),향 등 불교용품에서부터 모피까지 별별 물건을 다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장족의 전통옷과 버터,보석,양탄자,고가구와 골동품,말 편자,청바지,기념품 등 없는 게 없다.
예부터 티베트 최대의 무역 집산지였던 바로크가에는 티베트 각지의 특산물과 중국 인도 네팔 캐쉬미르 등지에서 온 각종 상품들이 넘쳐난다.
바로크가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조캉사원 정면의 바코르 광장에 서자 2년 전에 왔을 때에 비해 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사람은 여전히 붐비지만 상인들의 떠들썩한 호객 소리와 요란한 음악소리 등이 사라졌다.
"정부가 지난 2003년 광장 주변 상점들을 규격화해 광장 밖으로 이동시킨 데다 소음도 규제하고 있어 한결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게 라싸 출신 장족 청년 로부(25)의 설명.오체투지와 별의별 물건을 파는 상가가 어울린 조캉사원은 삶과 종교가 어우러진 현장이다.
라싸(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아직 어둠에 잠긴 노상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감자가 가득 담긴 수십 개의 부대를 죽 늘어놓은 채 감자 주인과 새벽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감자를 사고 파느라 왁자지껄하다.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은 들저울에 감자를 달고 흥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옆에는 대파를 무더기로 쌓아놓고 파는 사람도 있다.
어딜 가나 이렇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 사진 : 티베트 라싸의 조캉사원 주위를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돌고 있는 티베트 스님.누가 뭐라든,옆에서 사진을 찍든 말든 오직 절과 기도에 열중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행색은 초라하지만 깊고 고요한 눈이 인상적이다.]
라싸는 베이징보다 한참 서쪽에 있는 데도 같은 시각을 쓰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이른 시간이다.
상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뒤로한 채 조캉사원 쪽 골목으로 접어들자 역시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인다.
마니차를 돌리며 조캉사원으로 향하는 이들이다.
입으로는 '옴마니반메훔'을 끊임없이 외우면서 사원을 향해 잰걸음을 놓는다.
다른 사람들의 잰걸음과는 달리 세 걸음 걷고 한 번씩 몸을 땅에 붙이는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가는 사람도 여럿이다.
조캉사원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불어나 인파를 형성한다.
드디어 조캉사원 앞.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벌써 가득 모였다.
남녀노소 골고루 섞였다.
젊은 사람들은 제법 추운 날씨인 데도 반팔 차림이다.
마니차를 돌리며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사원 앞 광장은 금세 인산인해를 이룬다.
막 사원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미리 준비해왔거나 장사꾼에게 산 '샹'(향초·香草)을 사원 정면 양쪽의 '주니퍼'(향로)에 던져 넣으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그리고 풍년을 기원한다.
장사꾼들이 파는 '샹'은 한 봉지에 1위안.날이 샐 즈음에는 거의 동이 난다.
탐험대원들도 '샹'을 한 봉지씩 태우며 온 세상에 자비광명이 충만하기를 기원했다.
조캉사원 입구와 앞마당에는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대오를 이뤄 오체투지에 열중하고 있다.
방금 도착한 30대 여성이 어떻게 오체투지를 하는지 살펴보자.먼저 조캉사원 창틀에서 짤막한 솔을 가져와 바닥을 쓴 다음 오체투지용으로 만든 기다란 깔판을 깐다.
휴대전화를 꺼 가방에 넣은 뒤 신발을 벗고 깔판에 올라선다.
팔목에 염주를 낀 채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합장·기도한 뒤 오체투지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하던 오체투지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어느새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일어서 합장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벽 공기를 가른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렇게 조캉사원에 몰려드는 것일까.
포탈라궁이 달라이라마가 상주했던 궁전으로서 관광지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조캉사원은 살아 숨쉬는 신앙의 터전이요 중심이기 때문이다.
라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조캉사원이 처음 지어진 것은 서기 647년.당 태종의 양녀로서 토번국왕 송첸캄포에게 시집온 문성공주와 관련이 있다.
티베트의 토번 왕국이 라싸로 천도한 초기 각지에서 재앙이 끊이지 않자 천문과 음양오행에 밝았던 문성공주는 그 원인이 토번국의 지형에 있다고 판단했다.
토번국의 지형이 드러누워 있는 나찰녀의 모습인데 훙산(紅山) 남동쪽의 연못이 나찰녀의 심장이요 물은 그녀의 피라는 것.따라서 못을 메우고 사원을 지으면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문성공주는 제안했다.
이에 따라 송첸캄포는 흰 산양들에게 흙을 나르게 해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지역을 '산양의 땅'이라는 뜻의 '라싸'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후 '석가모니의 전당'이라는 뜻을 지닌 조캉사원은 라싸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라싸의 옛 성이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형성됐을 뿐만 아니라 전 티베트인들의 신앙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된 것.티베트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 이상은 조캉사원을 참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다.
라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챠체'라고 부르는 오체투지를 하며 짧게는 몇 달,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는 길을 달려와 조캉사원을 참배한다.
요즘에는 차로 와서 오체투지를 하기도 한다.
티베트 북부의 나취(那曲)에서 왔다는 초고무씨(37·여)는 "나취에서 차를 타고 사흘 만에 왔다"며 "오체투지를 하면서 불교가 세계 각지로 전파되기를 빌고 가족들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내세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했다.
라싸에 온 지 8년이 넘었다는 짜시쯔던군(16)은 오체투지의 '전문가'이다.
그는 "조캉사원에 참배하러 왔던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어머니만 집에 있다"며 "매일 오체투지를 하며 조캉사원 주위를 돌고 있다"고 말했다.
짜시쯔던군은 오체투지를 하면서 신자나 관광객들이 주는 돈을 받아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고 있다고 했다.
"오체투지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 아닌가"하고 오해했던 그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조캉사원 입구에서 사원을 둘러싼 원형 도로인 바코르가에 접어들자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 신자들이 행렬을 이룬다.
바코르가 좌우에는 마니차와 탕카(佛畵),향 등 불교용품에서부터 모피까지 별별 물건을 다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장족의 전통옷과 버터,보석,양탄자,고가구와 골동품,말 편자,청바지,기념품 등 없는 게 없다.
예부터 티베트 최대의 무역 집산지였던 바로크가에는 티베트 각지의 특산물과 중국 인도 네팔 캐쉬미르 등지에서 온 각종 상품들이 넘쳐난다.
바로크가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조캉사원 정면의 바코르 광장에 서자 2년 전에 왔을 때에 비해 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사람은 여전히 붐비지만 상인들의 떠들썩한 호객 소리와 요란한 음악소리 등이 사라졌다.
"정부가 지난 2003년 광장 주변 상점들을 규격화해 광장 밖으로 이동시킨 데다 소음도 규제하고 있어 한결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게 라싸 출신 장족 청년 로부(25)의 설명.오체투지와 별의별 물건을 파는 상가가 어울린 조캉사원은 삶과 종교가 어우러진 현장이다.
라싸(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