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의상인 두루마기도 수난을 겪은 적이 있다. 고종의 장례일에 백성들이 두루마기 등 흰 옷을 입고 팔도에서 모여들자,일제는 이를 항거의 표시로 받아들여 '흰옷금지' 캠페인을 전개했다. 흰옷은 곧 수의(壽衣)와 같으니 색깔이 있는 옷을 입으라는 강요였다. 심지어는 먹물이 든 물총을 쏘거나 솔가지에 빨간 물을 묻혀 뿌리기까지 했다. 두루마기가 일반 서민의 웃옷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 무렵 '복제(服制)개혁'에서 비롯됐다. 그 이전에는 사대부들만이 외출이나 제사를 지낼 때 두루마기의 전신이랄 수 있는 도포를 입었다. 도포는 깃이 곧고 소매가 넓을 뿐더러 섶과 헝겊을 덧댄 무가 있으며 뒷길의 중심선이 진동선부터 틔어 있다. 이 도포는 신분을 상징하는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져 도포를 입은 양반이 나타나면 평민들은 길을 비켜주거나 엎드려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평민복이 된 두루마기는 우선 모양부터가 개량됐다. 헐렁한 소매를 좁게 하고 밑동길이를 짧게 했으며 술 대신 단추를 달았다. '두루마기'라는 이름은 도포와는 달리 옆이 두루 막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두루마기의 어원을 몽고어에서 찾기도 한다. 몽고명으로 도포는'후리매'인데 제주도방언의 후리매가 두루마기라는 사실을 그 근거로 댄다. 이번 부산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21개국 정상들이 개최국의 전통의상을 입는 관례에 따라 우리 고유의 비단으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는다고 한다. 의상선정 과정에서 옛 관헌이 입은 조복과 도포,조끼,마고자 등이 후보로 올랐으나 그 중에서 두루마기가 착용하기 편하고 어색하지 않아 낙점됐다는 것이다. 두루마기는 외출용 예복이면서 아울러 손님을 맞을 때 집안에서도 입는 옷이다. 산적한 난제를 안고 회담에 임하는 정상들이 두루마기의 넉넉한 품만큼이나 상대국을 배려하는 아량과 예의를 갖춘다면 '부산 선언'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게 분명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