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마니아들은 '할리 데이비슨'을 '꿈의 기종'으로 부른다. 그리고 '자유'라는 개념과 동일시한다. 우리에게는 히피 차림의 젊은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떼지어 거리를 질주하는 영화 장면을 통해 각인된 브랜드다. 소비자들은 인기 모델을 구입하기 위해 몇 달씩 기다리는 게 보통이며 최신 제품보다는 값이 훨씬 비싼 구식을 더 선호한다. 한때 70%에 달하던 미국시장 점유율이 일본 기업의 공세로 5%까지 떨어졌을 때 회사를 살려 내기도 했다. '호그(HOG·Harley Owners Group)'는 이 유별난 추종자들의 모임. 세계 50여개국 60만여명의 회원이 있으며 한국에서만도 수백여 명이 가입해 있다. 광고비 지출이 거의 없는 기업이지만 1년 이상의 구입 대기자 명단을 계속 작성해야 할 만큼 열정적인 고객 파워를 자랑한다. 브랜드가 뿜어내는 고유의 문화를 상품화함으로써 대중화에 성공한 방정식,그것을 클래식이나 연극 혹은 전시 같은 장르에 적용하면 어떨까.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컬덕시대의 문화 마케팅'(김민주 외 지음,미래의창)은 현장 실무자들을 위한 지침서다. 컬덕은 영어의 컬처(Culture)와 프로덕트(Product)의 합성어. 이제까지 소수 엘리트에게만 제공됐던 고급 예술의 장막을 과감히 개방해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몸짓으로 해석된다. 저자는 공연·전시 기획자의 전략수립 방향,기업 문화마케팅 현황과 생리를 풍부한 사례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18년 전 임원 회의에서 "딱 10년만 음악회를 해 보자"며 세 번이나 제안했던 이건산업 회장. 이미자 공연이면 몰라도 클래식은 곤란하다는 임원들의 반대를 꺾고 시작한 공연이 올해로 16년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투자임을 인식하게 됐단다. '인간은 과학이 없으면 걸을 수 없고 예술이 없으면 멈출 수가 없으며 종교가 없으면 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제 문화가 시장에서 거래되고 대중의 소비를 기다리는 하나의 상품이라면 생산·유통·판매에 관한 경영이 화두가 되는 건 당연하다. 고급 문화를 향유하고 싶은 사람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296쪽,1만2000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