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들이 발행하는 해외 전환사채(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 중 상당수가 '무늬만 공모' 형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경제신문이 3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기업들의 해외 CB 및 BW 발행내역을 조사한 결과 명목상 공모 발행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2곳의 기관투자가가 물량을 모두 인수하는 등 사실상 '사모 형식'의 발행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모 사채의 경우 발행 후 1년간 주식전환이 금지되는 반면 공모 사채는 1개월만 지나면 곧바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어 물량을 인수한 기관투자가는 이득을 얻는 반면 일반 투자자는 물량부담이 조기에 가시화돼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늬만 공모' 기승


여리인터내셔널은 지난 1일 해외시장에서 400만달러 규모의 BW를 공모로 발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BW를 인수한 곳은 미국계 투자자문회사인 DKR오아시스매니지먼트 한 곳뿐이었다.


이 회사는 조세회피지역인 버뮤다에 설립된 DKR사운드쉐어오아시스홀딩펀드를 통해 BW를 전량 매입했다.


아이브릿지가 최근 발행한 450만달러 규모의 해외 BW와 유아원엔터테인먼트가 두 차례에 걸쳐 발행한 해외 BW 1000만달러어치,이즈온과 케이디씨정보통신이 각각 발행한 500만달러와 300만달러 규모의 해외 BW 등도 모두 DKR오아시스매니지먼트측이 전량 인수해갔다.


이모션이 발행한 3500만달러 규모의 CB는 케이맨군도 소재 애머랜스와 미국계 OZ매니지먼트가 나눠서 사들였다.


이들 CB와 BW는 공시상으로는 모두 '공모 발행'으로 신고됐지만 내용상으론 사모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증권업계 관계자는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CB나 BW를 말 그대로 공모 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실상 사전에 인수자를 정해 놓고 발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국내 기업들의 해외 CB나 BW를 사는 외국계 큰손들도 대략 7~8개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만 피해 우려


문제는 이들 CB나 BW가 명목상 공모라는 이유로 통상 1~3개월 뒤부터 주식전환이 가능한 데다 주식전환시 적게는 5~10%,많게는 20~30%가량의 신주가 발행돼 매물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 DKR오아시스매니지먼트는 지난 8월 말 코스닥기업인 큐로컴이 해외에서 공모한 CB 800만달러를 전량 인수해 17.89%의 지분을 확보한 뒤 한 달반 정도 만에 일부를 주식으로 전환,시장에 내다팔았다.


감독당국도 이 같은 이유로 '무늬만 공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공모를 가장한 사모 발행의 소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제재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관계자는 "실제 인수자가 몇 명이냐와 상관없이 50인 이상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청약권유가 이뤄지거나 1년 내에 50인 이상에게 전매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공모로 간주된다"며 "인수자가 적다고 해서 법규 위반이라고 단정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한 상장기업 관계자도 "중소기업들이 은행이나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라며 "해외 CB나 BW 발행마저 막히면 자금줄이 끊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