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호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최근 미국의 잇단 정책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뚜렷하다. 이머징마켓 중심으로 외국인 주식 매도세도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 하에서 미국 내 은행으로부터 차입해 이머징 마켓에 투입했던 투기성 자금이 미국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세계적으로 금융불안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으로 유입되는 막대한 개도국 자금이 건재하기 때문에 아직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을 논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개도국 자금은 미국 국채에서 정부 보증채로,즉 미국 내에서만 이동하고 있어 글로벌 유동성의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개도국의 달러 자금이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을 키운다는 데 있다. 최근의 미국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과 내부 사정이 복잡한 개도국 사이에서 불거지는 현상이다. 과거에는 주요한 대미 무역 흑자국인 독일과 일본이 달러 약세를 유도해 미국의 대외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 협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여유를 가진 선진국이 없다.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국인 중국은 시장경제를 지향하지만,그 이상으로 완전고용을 중시하는 다민족 사회주의 개발도상국이다. 이런 중국이 실업률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무작정 미국 자산을 사들여 위안화 절상을 막는 것은 이해되는 일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내부 사정이 복잡한 다른 개도국의 처지도 중국과 비슷할 것이다. 이런 개도국의 행태로 인해 미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달러 가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미 무역흑자로 개도국이 얻은 달러화가 다시 미국으로 유입되는 바람에 미국 내 금리가 적정 수준 이하로 낮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 가계의 과잉 소비를 부추길 뿐 아니라 미국 내 자금의 투기 성향을 자극해 부동산 버블이라든지 이머징마켓 등에 대한 과잉 투자를 야기한다. 정책 당국이 금리를 인상해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오히려 강(强)달러 현상이 야기돼 미국 가계의 과잉 소비와 경상수지 적자가 더 부추겨질 우려도 발생한다. 게다가 달러 강세에 걸맞지 않게 채무자인 미국의 경제 체질은 점점 허약해지고 있다. 첫째,미국은 대외 빚이 너무 많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 유력하다. 그간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가계 저축률은 빠르게 하락해 최근 드디어 마이너스(-0.6%)에 진입했다. 이는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더 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빚을 갚을 능력도 떨어져 간다. 아무리 빚이 많아도 생산성이나 수출 경쟁력이 높다면 신뢰도는 유지될 것이다. 설비투자 붐이 일었던 1990년대의 미국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소비와 건설 경기다. 저금리가 유지된 최근 4년간 미국 내 소비와 건설투자의 성장 기여율이 90%를 상회했다. 민간부문의 신규고용 중 40%가 건설,모기지 중개업 등 주택경기와 관련된다. 반면 미국 기업의 자본재 투자는 GDP 대비 장기 평균치를 하향 이탈하고 있으며 이의 영향으로 최근 생산성이 둔화되고 있다. 투자 부진과 개도국 저가 제품의 공세에 밀려 미국의 수출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다. 이 같은 악순환-달러 러시와 미국의 부채 상환 능력 저하-은 달러화 강세가 '일시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지속되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달러 자산 투매와 연쇄적인 자금 회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그렇다면 산업과 금융 기반이 취약한 개도국이 더 큰 피해자가 된다. 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개도국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이 그걸 믿고 버티는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