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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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을 보며 살았다.
강물을 따라왔던 것들은 눈부셨고,강물을 따라 가버린 것들도 눈부셨다.
아침 강물은 얼마나 반짝이고 저문 물은 얼마나 바빴던고.… 나는 강가에 서있는 산처럼 늘 흐르는 물에 목이 말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흐르는 강물에 죽고 사는 달빛 한 조각 건지지 못했다.
…참으로 인생은 바람같은 것이었다.'
'인생은 나그네길/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정처없이 흘러서 간다/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앞의 것은 시인 김용택씨의 산문집 '인생',뒤의 것은 가요 '하숙생'(김석야 작사,최희준 노래)의 일부다. 시인의 글과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사람들은 안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죽을 것처럼 괴롭던 일도 세월이 가면 잊혀지고,지루하고 안타깝던 청춘이 지나가면 눈 깜짝할 새 삶의 뒤안길에 서게 된다는 걸.
그러면서도 부인하지 못한다.
인생이 아무리 하숙생의 여정같은 것이라 해도 사는 동안 타고 있는 청룡열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그때그때 마감을 지키고 다음 일을 쫓아가느라 왜 사는지조차 잊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하숙생'의 작곡가 김호길씨가 세상을 떠났다. 노래는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하숙생'이 나온 1966년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로 이 땅에 고도성장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던 때다.
'창작과 비평'이 창간되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남진의 '가슴아프게'가 나온 것도 이런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발 붐은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을 만들고 떠난 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동안 남은 이는 눈물지었을 테니까.'하숙생'의 히트도 마찬가지였을까. 개발붐 속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들의 외로움과 허전함은 노래로밖에 달랠 길이 없었을지 모른다. 모든 게 생각의 속도로 바뀐다는 지금 인생 하숙생들의 심정은 어떨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