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에 기계의 손을 거치지 않고 태동한 분야가 있을까. 1970년대 우리나라 수출을 이끌던 섬유부터 오늘날 '빅3' 산업인 자동차 선박 반도체까지 모든 산업이 사실상 기계 산업의 토대 위에서 성장했다. 산업자원부 내 일반기계 정책을 맡고 있는 '산업기계과'가 30년이 넘도록 과 명칭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기계산업이 우리나라 제조업 성장의 초석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말해 준다. 기계산업은 2군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선수처럼 눈물겹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140억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적자에 허덕였던 분야다. 대일 수입의존도는 36%가 넘어 각종 정부시책에서 문제아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기계산업은 올해 200억달러 수출을 눈앞에 둔 '메이저 리거'로 당당히 세계무대에 오르고 있다. 만성적인 무역적자도 2004년 6억달러 흑자로 돌아서더니 올해는 35억달러대의 흑자가 기대되고 있다. 연간 고용인원은 30만명을 웃돌아 일자리 창출의 견인차 역할까지 하고 있다. 수출 무역수지 고용의 3박자를 고루 갖춘 공격과 수비가 자유자재인 '멀티 플레이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기계산업이 발돋움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내수시장에 집중하지 않고 재빨리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점이다. 해수 담수설비의 경우 국내 시장 기반 없이 물 부족을 겪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겨냥,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대표적 예다. 해외시장의 흐름에 맞춰 기계업체들이 중국 등 세계시장을 개척한 점도 한 몫을 했다. 기술면에서는 국내 정보기술(IT) 기반을 기회 삼아 기계와 전기전자 기술을 융합하는 메커트로닉스로 뚫어냈다. 물론 기계산업은 꾸준한 성적을 내는 '스테디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원천기술 개발,전문인력 양성,지속적인 신시장 개척 등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독일이 기계분야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대접받는 것은 업계와 정부가 100년 이상 노력한 결과다. 우리 기계산업의 미래를 짧은 호흡이 아닌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