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反기업정서는 경제발전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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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 서울대 교수·경제학 >
새삼스런 말이지만 부(富)의 원천은 생산이고 생산의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 활동이 왕성하면 온 나라에 생기가 넘치고 반대로 기업들이 고전하면 나라경제도 시들해진다.
민생이 기업 활동에 달린 만큼 사람마다 기업 잘되기를 바라야 할 터인데 오히려 반(反)기업정서가 문제로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정상적 사회라면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개발 연대의 뿌리 깊은 유산인 만큼 언제까지나 피해갈 수는 없다.
마땅히 극복해야 할 시대의 과제지만 정말 지혜롭게 극복해야 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구시대의 낡은 체제와 관행을 벗어던져야 한다.
만에 하나 기업과 반기업정서가 계속 험악하게 맞서고 결국 기업 활동의 토대까지 파괴하는 국면으로 내닫는다면 우리 경제는 헤어나기 어려운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개발 연대에 금융시장은 국내의 유망한 기업가를 제대로 판별하지 못했다.
당시 국내 금융시장은 걸음마 단계였다.
국제금융시장은 휴전 직후 남북대치 위험 속의 한국을 시장으로 치지도 않았다.
정부는 시장을 대신해 유망한 기업가들을 선별하고 이들을 지원했다.
정부 개발정책의 요체는 결국 유능한 기업가를 찾아 이들이 소요자금을 확보해 여러 현대적 제조업을 건설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유망한 기업가들이 많지 않았기에 이들은 정부 특혜를 거듭 받으면서 후진 한국을 오늘의 산업 강국으로 도약시켰다.
이 과정의 산물이 재벌체제다.
재벌체제가 성취한 산업화는 정말 빛나는 성과다.
그러나 국민은 이 점을 인지하면서도 천문학적 규모의 특혜적 지원도 잊지 않고 있다.
재벌체제는 개인 자금력이 유한한 총수가 최대한 많은 숫자의 사업체를 거느리는 데 효과적이다.
재벌체제의 특징은 피라미드형 소유구조다.
총수는 한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개인적으로는 계열사 자본금의 평균 5% 정도를 투자하고도 40% 정도의 의결권을 누린다.
이 만큼의 의결권은 이사와 감사를 총수 마음대로 선임하고 주식시장에서의 M&A 위협을 효과적으로 봉쇄하는 데 충분하다.
총수의 권위는 소유구조상 그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황제적인 것이다.
그러나 기업 이익에 대한 총수의 몫은 5%에 불과하다.
총수는 기업에 해를 끼치더라도 기업 외부에서 이 손실의 5%보다 더 큰 자신의 사적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한다.
물론 유능한 총수는 이 막강한 힘을 이용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더 많은 총수들의 고삐 풀린 섣부른 확장 결정은 그룹 전체를 도산으로 몰고 갔다.
누가 기업을 번성시키는가? 새로운 상품이나 공법의 혁신적 창안과 생산과정의 효율적 관리에 능한 기업가다.
금융시장은 이러한 기업가들을 잘 선별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과거 금융시장은 총수들의 무분별한 확장경쟁에까지 자금을 지원했기에 결국 여러 그룹을 도산시킨 환란을 초래했다.
만약 총수의 의사결정이 그룹 내부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금융시장에서 합리적으로 검증되는 체제라면 기업실패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기업가의 왕성한 혁신을 억누르지 말고 아직 남아있는 관치금융의 잔재를 청산하면 유능한 기업가가 이끄는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기업가가 자신의 사적 이익보다는 기업이익을 앞세우도록 하고 사업계획을 내부적으로 철저히 점검하도록 하는 체제를 구축하려면 합당한 기업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
누가 보아도 수긍이 가는 기업지배구조 아래 총수들이 부당한 사적 이익은 깨끗하게 포기하고,사회는 기업의 정당한 소득을 철저히 보호하며,그리고 정부는 기업가 혁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때 반기업정서는 사라지고 우리 기업들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