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는 '생명과학 연구자 윤리헌장'을 제정,발표했다.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연구 대상에 대한 규정을 준수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를 두고 생명과학 관련 학계 최초의 윤리 강령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생명과학 윤리문제가 사회적 이슈로까지 떠오른 터라 연구자 스스로가 보편적 윤리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의의를 갖는다는 얘기다. 임인경 분자세포생물학회 윤리위원장은 "이번 헌장이 강제성을 띠는 규정은 아니지만 연구자들이 윤리 문제에 관심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과학계는 이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생명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헌장 제정을 통해 스스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실천이 따를까'하는 부정적 시각이 벌써부터 대두되고 있다. 과학적 성취에 목말라하는 연구자들에게 이런 구호가 얼마나 깊이 파고들 것인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다. 또 헌장은 어디까지가 생명 존엄성의 한계인지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구속력 없는 헌장보다는 학회 차원에서라도 분명한 규정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하다"는 한 과학자의 지적은 이런 연유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과학자들은 물론 현재 정부의 생명윤리법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 일일이 모든 연구팀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연구현장을 가장 잘 아는 학회 같은 연구자 커뮤니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학회 역시 이번 헌장이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향후 시간을 두고 여러 회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구체적인 행동 강령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근본적으론 연구자들의 '다짐' 수준에 그칠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과학자들 스스로 보다 강하고 구속력 있는 규정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장원락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