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 논설위원 >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면 부산 거리가 얼마나 들썩거리는지.야외상영관이 있는 해운대 수영만 일대와 남포동 극장가의 분위기가 얼마나 젊고 활기찬지.수많은 운영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개.폐막식같은 공식행사가 수많은 다른 지역 축제와 어떻게 다른지.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면 부산은 '시네마 천국'이 된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의 감독과 스타 등 전 세계 영화인들이 집결하고,전국에서 몰려든 열성 팬들로 남포동 일대는 발디딜 틈이 없다. 개막식 표는 완전매진이고 평균 객석점유율은 90%가 넘고,극장 앞엔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노숙도 불사하는 젊은 관객들이 넘친다. 뿐이랴.영화제 개막식은 조직위원장(허남식 부산시장)의 개막선언,축하공연,집행위원장(김동호)의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 소개,개막작의 감독 및 주연배우 소개로 끝난다. 각계 각층 내빈 소개도,부산시장의 인사말도,장관과 국회의원들의 축사도 없다. 금년의 경우 개막식 다음날 열린 '부산영상센터(가칭)'건립 기공식도 마찬가지.간단한 내빈 소개,부산시장의 인사,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의 축사,공모전 출품작 슬라이드쇼와 사물놀이 공연이 전부였다. 흔한 테이프 커팅도 없었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부산영화제는 처음부터 그랬다. 지원은 받되 간섭은 받지 않고 그 어떤 정치색도 배제한 순수한 영화잔치로 꾸려나간다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방침을 부산시 쪽에서 받아들임으로써 10년 동안 개막식 무대엔 영화인 말곤 아무도 서지 않았고 내빈 자리 또한 단상이 아닌 객석에 마련됐다. 부산영화제가 짧은 기간에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잡은 건 바로 이런 대목들에 기인한다. 부산을 세계적 영상메카로 만들기 위한 집행위 조직위의 의지와 노력,정치색 및 허례허식의 배제,차별화를 위한 아시아영화제로서의 알찬 기획,부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영화팬들의 뜨거운 성원이 그것이다. 한국영화의 눈부신 성장과 부산영화제의 도약은 세계 영화계에서 기적으로 여겨질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자국 영화를 더 많이 보는 유일한 나라인데다 부산영화제는 불과 10년 만에 500개 이상의 세계 영화제 중 칸과 베를린,선댄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모두 찾아올 만큼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부산이 21세기 문화강국의 기틀이 될 동북아 영상산업의 허브가 되자면 아시아 최고가 아닌 명실상부한 세계적 영화제로 올라서야 한다. 영화진흥위와 영상물등급심의위의 이전이 확정되고 오랜 소망이던 영상센터를 세우게 된 만큼 개최일도 고정시키고 좀 더 효율적인 진행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칸이나 베니스 영화제 수준이 되자면 보다 체계적인 조직력,전문적인 상근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 증대,흥행 이벤트에서 발생 가능한 사고 대비책,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야 하는 관람객의 불편 해소,질서 의식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미국 흥행시장을 두드리는 한국영화의 도전이 성공하려면 창의적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제프리 길모어 선댄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말도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하다.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