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번역과 창작‥홍석주 <한국증권금융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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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주 < 한국증권금융 사장 sjhong@ksfc.co.kr >
신문에 나온 서평을 읽다 보면 경영이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자주 발견한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책은 문학작품을 제외하면 창작보다는 번역본이 훨씬 많다.
그만큼 창작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번역본을 읽다 보면 오역이나 불충분한 번역으로 인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차라리 원전을 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원전을 통째로 읽고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원어 해독실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역이 주는 문제점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구체적인 사례를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으나 최근 번역본을 읽다 잘 넘어가지 않은 구절이 있어 소개해 본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그들의 최종 경쟁자들을 자신들의 품안에서 양성하는 데 탁월하다." 영어에서는 명사의 단수형과 복수형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하지만 우리글은 명사 자체가 복수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굳이 '들'이라는 접미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은데 번역자가 이를 간과한 것 같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영어에서는 수동형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참으로 어색하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한다.
저자가 전하려는 말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우리말로 전달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즉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는 원전을 확실히 이해한 다음 우리말로 다시 창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번역자의 국어 실력이 탄탄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친구의 얘기로는 외국에서 신간 서적이 나오는 순간 원작 출판사를 접촉하면서 해당 언어 전공자를 동원해 단기간에 번역하는 신속함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한권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번역한 뒤 간단한 감수를 거쳐 시판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앞장과 뒷장에서 사용한 용어가 틀리거나 그 뜻이 달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를 때 저자를 우선하듯 앞으로는 번역서를 고를 때도 번역자가 누구인지를 보고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번역을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인정하여 많은 전문 번역가를 배출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말라 하는 경영자와 일반 독자를 위해 책과 벗하기 좋은 이 계절 보다 나은 번역본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