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관광이 현대아산과 북한 간 계약관계가 분명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북측과 개성 관광사업에 관련한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출을 문제삼아 현대그룹을 공격하던 북측은 '지렛대'로 삼았던 롯데관광이 한 걸음 물러섬에 따라 전략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제계 한 인사는 "북측의 무리한 요구를 더 이상 들어줄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현대도 이번 북측과의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기보다는 원칙을 지켜가며 대응한다는 자세를 유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당분간 북측과 협상 안 한다' 롯데관광 이순남 기획실장은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개성 관광사업은 현대아산과 북한 간의 계약관계가 분명히 정리되고 정부 당국의 승인도 따라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아산이 북측과 맺었다는 7대 사업 독점권에 대한 합의서가 실제 효력이 있는지,앞으로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 분명해진 후에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이 실장은 "일부 언론의 '1000만달러 지원' '1인당 관광 대가 200달러 책정' 등의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면서 "북측은 개성 관광사업과 관련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해오지 않았으며 롯데관광도 제안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북측이 롯데관광에 개성 관광사업을 제안한 것은 롯데관광의 일본인 모객 능력을 높이 산 까닭인 것 같다"며 "수도권 지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을 경의선을 통해 개성으로 보내면 수익성이 있을 것 같아 KTX관광레저를 통한 열차 관광을 실시하기 위해 지난 3월 당국으로부터 대북접촉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북측이 제시해 온 개성 관광사업과 관련해 현대와 공식적으로 협의한 적이 없다"며 "현대가 제의해 온다면 언제든 협의에 응하고 사업을 같이 추진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는 북측에서 추가 제안이 오더라도 롯데관광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상황이 아니다"며 "통일부 및 현대아산의 의견과 국민 여론을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상술' 안 먹힌다 경제계는 롯데관광의 이 같은 입장 정리가 향후 모든 기업들이 북한과의 비즈니스에서 원칙을 우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특히 기업들이 북한과의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어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롯데관광측도 이날 "일각에서 거론되는 관광 대가는 국민 정서상 곤란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때마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윤규 전 부회장에 대한 의법 조치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곧 경쟁이라도 할 것처럼 비쳐졌던 국내 기업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에 따라 북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관심이다. 특히 김윤규 전 부회장 파동 이후 대북 관광사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북측으로서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핵 협상 타결로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독 관광사업만은 예외인 것 같다"며 "과거의 현대그룹처럼 수익성을 무시한 채 대북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기업은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일·류시훈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