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마요네즈 브랜드인 베스트푸드가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다름아닌 한국이다. 토종 기업 오뚜기에 밀려서다. 오뚜기가 거대 브랜드의 '외침(外侵)'을 물리치고 시장을 지켜낸 이면에는 '살인극(殺人劇)'까지 부른 처절한 영업 전투가 숨어 있다. 오뚜기가 마요네즈를 선보인 것은 1972년.일찍이 서구 조미식품의 한국화에 눈을 떴던 창업주 함태호 회장이 카레(69년) 수프(70년) 케첩(71년)에 이어 내놓은 서구 소스 제품 완결작이다. '오뚜기 마요네스'는 시판 초기 생산량보다 반품량이 많을 정도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빠른 속도로 품질을 개선하면서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나 81년 최대 위기에 봉착한다. 베스트푸드 마요네즈로 잘 알려진 미국 CPC인터내셔널이 국내 대표적인 조미료 업체 미원(대상의 옛 이름)과 손잡고 '리본표 크노르 마요네즈'를 낸 것.오뚜기보다 외형이 10배나 컸던 미원의 유통망과 소비자들의 외제 선호 현상이 겹쳐 리본표 제품은 점유율 35%까지 치고 올라왔다. 당시 독점을 누리고 있던 오뚜기 제품의 점유율은 55%까지 떨어졌다. 주력 제품이 모두 한국화된 서구 소스 제품이었던 오뚜기는 마요네즈 시장을 외국 브랜드에 내 줄 경우 다른 시장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사활을 건 대응에 나섰다. 84년 제품 라인업을 기존 1개에서 2개로 확대하는 동시에 유통 매장에서의 영업 강화에 '올인'했다. 2개 제품을 앞세워 진열대의 좋은 목(골든 스페이스)을 차지하려는 오뚜기의 영업 공세는 미원측을 자극해 양측 영업사원 간 감정 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살인극'까지 초래했다. 가락동 식품 도매시장 내 제품 진열을 둘러싸고 양측 영업사원들이 한밤 패싸움을 벌이다 미원측 직원이 죽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당시 마요네즈 시장의 경쟁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오뚜기의 파상 공세에 밀려 리본표는 상승세가 꺾이고 96년 미원과 CPC인터내셔널은 합작 관계를 청산하고 만다. 현재 '오뚜기 마요네스'의 시장 점유율은 80%.오뚜기 관계자는 "당시 마요네즈 시장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의 본질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지금도 오뚜기와 경쟁하는 업체들이 버거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