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이 투표일(18일)을 이틀 앞두고 예측불허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당초 큰 격차로 승리가 유력시됐던 안겔라 메르켈 총재가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연합(기민련·CDU/CSU)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반면 집권 여당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회민주당(사민당·SPD) 지지율은 막판 상승세를 타 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독일 여론조사기관인 포르사의 지난 12일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사민당(35%)과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7%)의 지지율은 총 42%로 기민련(42%)과 동률을 기록했다. 기민련은 연정 파트너로 예상되는 자유당 지지율(6%)을 합칠 경우 여전히 사민당측을 앞서고 있으나 과반 의석에는 못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정가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여당인 사민당과 야당인 기민련 어느쪽이 승리하더라도 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종반전 지지율 변화 슈뢰더 총리는 이번 총선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 실업자 증가 등으로 인기가 떨어지고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하자 지난 5월 유권자의 재신임을 묻겠다며 예정보다 1년 앞당겨 총선을 치르는 카드를 빼들었기 때문에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의 조기총선 결정 이후 기선을 잡은 쪽은 기민련이었다. 기민련은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해 지난 6월에는 50%를 육박,30%를 밑돌던 사민당을 20%포인트 이상 앞서기도 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기민련과 사민당의 지지율 격차는 10%포인트를 넘어 독일 정가에서는 메르켈 총재가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지난 4일 실시된 슈뢰더 총리와 메르켈 총재의 TV토론을 기점으로 양당 지지율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기민련의 지지율은 떨어지고,사민당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올라가는 양상이다. 메르켈 총재가 TV토론에서 지도자 이미지를 확실히 부각하지 못했던 데 따른 결과다. 여기에 메르켈 총재가 섀도캐비닛(예비내각)의 차기 재무장관으로 내정한 파울 키르호프가 단일소득세율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여론의 역풍을 맞아 기민련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상하는 연정 시나리오 여당과 야당 모두 지지율이 과반을 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여야 정당들 간에 온갖 연정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먼저 사민당과 기민련 간의 대연정론이다. 양당이 합치면 과반의석을 훨씬 넘긴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지난 7월부터 이 같은 시나리오가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경제주의를 표방하는 사민당과 신자유주의적 정강정책을 앞세운 기민련이 노선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독일 경제계는 양당 간 정책차이가 커 대연정이 이뤄질 경우 경제개혁이 후퇴할 것이란 우려로 대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재 연립정부인 사민당과 녹색당에다 좌파연합을 합쳐 과반을 넘기는 연정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좌파연합의 오스카 라퐁텐 총재가 보수색채를 살짝 더한 사민당의 노선에 반대,탈당했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라퐁텐 총재는 "사민당과 합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기민련이 자유당 및 좌파연합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지만 정당 간 색깔이 크게 달라 역시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사민당의 신(新)중도 정책에 불만을 품고 탈당한 세력과 옛 동독의 공산당 세력이 합쳐 지난 6월 창당한 좌파연합(지지율 7%)이 캐스팅보트를 쥘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어 독일은 총선 이후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슈뢰더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의 지지율 마지노선으로 38%를 잡고 있다. 사민당 지지율이 이보다 낮게 나올 경우 기민련과 손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