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이 9·11 총선(중의원 선거)에서 296석을 따내는 압도적인 대승을 거둠에 따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임기연장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12일 새벽 개표 결과가 확정된 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 말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자민당은 물론 연립여당인 공명당측에서도 임기 연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2007년 여름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까지 고이즈미 총재 체제를 끌고 가자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다케베 쓰토무 자민당 간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개혁을 철저하게 완수하려면 고이즈미가 필요하다"며 이 같은 속내를 내비쳤다. 간자키 다케노리 공명당 대표도 이날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을 원하는 국민의 기대를 받아들여 중요한 역할을 계속 맡아주길 바란다"며 임기 연장론을 지지했다. 한편 일본 정가에서는 이번 총선이 고이즈미의 압승으로 귀결됨에 따라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돼왔던 양당제가 사실상 붕괴돼 거대 여당이 주도하는 정국으로 급변하고 주요 계파들이 와해 상태인 자민당도 '고이즈미 당'으로 급속히 재편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도 민주당 오카다 가츠야 대표가 사임 의사를 밝히는 등 지도부 사퇴에 따른 물갈이가 불가피해 일본 정치권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또 연립 여당이 중의원 전체 의석 가운데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헌법 개정 논란이 거세지는 등 보수 우경화 기조가 강화될 전망이다.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을 맞는 11월15일 개헌안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자민당 고이즈미 독주체제로 자민당은 계파 보스 중심에서 고이즈미 총리를 정점으로 한 사실상 1인 중심 정당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이즈미총리는 선거과정에서 우정공사 민영화에 반대한 구파 세력을 몰아내고 신진 세력을 대거 공천해 당선시켰다. 이에 따라 자민당 내 계파들은 거의 지리멸렬된 상태다. 실제로 그동안 자민당을 움직여온 하시모토,모리,호리우치,가메이 등 주요 4개 파벌 중 고이즈미 정권 탄생을 지원했던 모리파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나머지 파벌은 사실상 해체 내지 와해됐다. 당내 최대 세력이던 하시모토파는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가 뇌물사건을 둘러싸고 선거전 스스로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와해됐다. 우정 민영화 법안을 반대한 호리우치파와 가메이파는 계파 보스가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당내 구심점이 없어졌다. 호리우치파 보스인 호리우치 미쓰오와 가메이파 보스인 가메이 시즈카는 자민당이 공천한 '자객'들의 도전을 뿌리치고 당선됐지만 영향력은 상실했다는 평가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 일부에서는 선거 결과 자민당만 의석이 늘고 공명당은 의석이 줄어든데 대해 당지도부의 전략 차질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흘러 나왔다. 양당 대표가 공조 체제를 확인했지만 자민당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세대 교체 불가피 민주당은 1996년 창당 이후 중의원 선거에서 52-127-177석으로 계속 의석을 늘리면서 정권 교체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의 참패로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 오카다 가츠야 대표는 이날 대표 사임 의사를 표명했으며,간사장 대표대행 등 당직자들도 소선거구에서 줄줄이 낙마해 당장 당지도부 개편이 시급해 졌다. 당 지도부는 오는 17일 의원총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발족시키기로 했지만 선거 후유증이 커 후임 대표를 고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 재건을 위해 베테랑급 중진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오자와 이치로 부대표,간 나오토 전 대표,하토야마 유키오 전 대표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은 국민이 바라는 개혁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노다 요시히코 의원(48),마에하라 세이지 의원(43) 등 40대에서 대표를 맡아 당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군소 정당인 공산당은 기존 의석 9석을 지켰고,사민당은 2석이 늘어난 7석을 획득해 당 간판을 지켰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