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사현장을 가보니] (中) 약해지는 노동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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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네티컷주 트럼블시 교외에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 본사.세계 최고의 우량 기업인 이곳에도 노동조합이 결성돼 있지만 노사갈등으로 생산 차질을 빚는 경우는 없다.
노사 모두가 '파이 나누기'보다는 '파이 키우기'에 온 정열을 쏟기 때문이다.
노사협상 과정에서 분배를 둘러싼 실랑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파업까지 가지는 않는다.
지난달 23일 이곳을 방문했을 때 빌 케이시 GE 노무관리부장은 "노조가 분배나 고용안정을 위해 억지 주장을 펴는 일은 없다"며 "회사와 노조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현재 GE그룹의 전체 직원은 15만명.이 중 15%인 2만3000명이 50개 노조에 가입해 있다.
개별 사업장 내 복수 노조가 허용된 까닭에 한 개 사업장에서 5개 노조에 가입한 곳도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만 해도 8만명에 달했던 조합원이 계속 탈퇴하고 있다. 노조에 가입해 봐야 실익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GE에는 노조를 다루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단호하고 거칠게,둘째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공정하게,셋째 이러한 룰을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을 밀고 나가야 노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케이시 부장은 강조했다.
미국 노사 현장에서는 사용자들이 틈만 나면 '무노조 캠페인'에 나선다. 케이시 부장은 "근로자들의 신규 노조 가입을 막고 기존 노조원의 탈퇴를 위해 설득과 종용 등의 방식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노조가 있으면 아무래도 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캠페인 덕분에 GE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체 노조 조직률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사용자의 이러한 반(反)노동운동 행위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예 신규 인력 채용 때부터 노조에 가입하지 않을 사람만 골라서 뽑는 기업도 많다. 펜실베이니아 앨런타운시에 위치한 에어프러덕트가 대표적이다.
산업용 가스,의료기기,반도체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직원 채용 때 평균 5시간 이상 면접을 한다. 트럭기사를 뽑을 때도 면접시간이 3시간을 넘기 일쑤다.
폴 호프만 인적자원부장은 "오랜 시간 면접을 해야 인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노조에 가입할 것인지,아닌지를 판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14개 공장에 모두 1만95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이 가운데 1200명만 트럭노조,철강노조,화학노조 등에 가입해 있다. 그렇지만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경우는 없으며 노사협상도 한 달이면 타결된다.
미국에서 노사 간 힘의 균형이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데는 법원의 판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노사관계법률은 최소한의 규정만 정하고 노사 간 분쟁은 법원의 판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들은 기본적으로 경영권을 대폭 존중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극렬했던 미국의 노동운동이 한몫하고 있다.
미시간 노동대학원의 마이클 무어 교수는 "미국의 노동운동도 80년대 초까지 극렬한 투쟁을 벌여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며 "이러한 과격한 운동은 경제 및 사회 불안으로 이어져 결국 법원이 사용자의 손을 들어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법원들은 아직도 근로자를 무책임한 존재로 보고 있으며 노조가 파업할 경우 경영진이 생산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대체근로를 무한정 허용하고 있다. 또 근로자들은 사용자에게 일정한 존경과 복종심을 보여야 하고,경영진과 종업원은 대등한 동반자가 아니라 경영진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트럼블(미 코네티컷주)=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