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한다며 주식을 매집했다가 단기간에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특히 이처럼 ‘무늬만 M&A(인수·합병)’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 3월에 보유지분 목적 신고의무가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 ‘합법적인 작전’의 빌미만 제공했을 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은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고,주식을 사고 파는 건 전적으로 투자자 책임이라며 사실상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곳곳에서 '치고 빠지기'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장외 기업인 제일정밀은 지난 5월 거래소 기업인 KDS 지분 5.86%를 '경영 참여' 목적으로 매입한 뒤 회사측과 공동 경영까지 표방했지만 지분 대부분을 몰래 장내에서 매각했다. 제일정밀의 지분 매각 사실이 알려진 지난 5일 KDS 주가는 8%나 떨어졌다. 코스닥 기업인 엘리코파워 지분 11.45%를 역시 '경영 참여' 목적으로 사들인 장외 기업 씨에스엠도 지난 8월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로 변경한 데 이어 이달 6일 보유 주식 전량을 7명의 개인에게 장외에서 매각했다고 신고했다. 씨에스엠은 두 달여 만에 약 40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엘리코파워 주가는 6일 하한가에 이어 7일에도 10% 넘게 빠졌다. 지난 8월에는 한 개인투자자가 코스닥 기업인 썬코리아전자에 대해 경영 참여를 선언한 지 열흘도 안 돼 이를 번복하며 보유 지분을 8.81%에서 5% 미만으로 낮춰 주가에 충격을 줬다. 지분율이 5% 미만이면 지분변동 공시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나머지 지분도 매각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인기 연예인 하지원씨(본명 전해림)도 지난 6월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와 공동으로 코스닥 기업인 스펙트럼DVD에 대해 '경영 참여' 공시를 냈으나 8월 들어 정 대표와 공동 보유 관계를 해소하며 투자목적을 '단순 투자'로 변경했다. 하씨는 이어 보유 지분 11.01% 가운데 6.03%를 매각,9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외국계 큰손도 예외가 아니다. 싱가포르 소재 템플턴자산운용은 지난 6월 18개 종목의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일괄 변경한 뒤 삼성중공업 하이트맥주 등 6개 종목을 일부 매각했다. ◆'손 놓은'금융당국 이처럼 '무늬만 경영 참여'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현행 제도상 경영 참여 공시만으로는 지분 보유자의 '본심'이 진짜 경영 참여인지,아니면 '주가 띄우기'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데다 보유 목적을 변경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 참여를 선언했더라도 지분을 팔고 싶을 때는 언제든 보유 목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큰손들이 경영 참여 공시를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열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은 '투자자 책임'만 강조하며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영 참여 공시를 내고 지분을 처분하든,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보유 목적을 바꾼 뒤 지분을 처분하든 불공정 거래가 없다면 그 자체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며 "불공정 거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개별 사안마다 조사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투자자들이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분 보유 목적 신고 의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제도 자체가 허술하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투자자 보호 책임이 있는 감독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