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4:49
수정2006.04.03 04:51
洪 起 澤 < 중앙대 교수·경제학 >
흔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 초일류 기업이 몇 개는 더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불법도청테이프가 공개된 이후, 삼성은 정치권과의 은밀한 돈거래 의혹에 휩싸였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삼성전자도 과거 정경유착의 산물이다.
오늘의 삼성전자는 1980년대 초반의 반도체사업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일본과 미국의 전자산업을 살펴본 고(故 ) 이병철 회장이 우리 기술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반도체사업에 과감히 뛰어 들었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반도체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 회장은 대통령을 직접 면담하고 반도체사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청와대에서 공공연하게 재벌들에게 정치자금을 할당해 요청하던 시기였다.
삼성전자는 반도체공장 건설에 필요한 토지사용을 비롯한 각종 인ㆍ허가를 쉽게 얻어냈고 은행의 자금지원도 용이하게 받아냈다.
그후 몇 번의 고비를 넘겼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을 세계 최고로 키웠으며 이를 기반으로 휴대폰,모니터,액정TV에 걸쳐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가 작년 우리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4%나 된다. 또한 전체 매출액 중 86%가 해외영업에서 발생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브랜드가치만도 150억달러에 달해 세계 20위에 이르는 기업으로 태어났다.
역설적으로 현재 여론의 지탄 대상인 정경유착이 없었으면 삼성전자는 오늘과 같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더 크게 보면 '한강의 기적'이라는 우리의 산업화는 정경유착이란 불투명한 제도 속에서 이뤄진 업적이다. 도덕적ㆍ윤리적ㆍ법적 결함에도 불구,이러한 시스템이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런 불투명한 부패구조를 가지고는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
정경유착은 구시대적 유물로 청산돼야 할 대상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과 정부의 투명성은 한층 강화됐고 참여정부 들어 구시대적 정경유착은 완전히 근절됐다.
정부는 이런 노력의 결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른 효율성 증대로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강조한다.
정경유착도 근절돼 기업이 투자에만 전념할 수 있어 투자환경은 크게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성장률은 지난 3년간 계속해서 세계 평균치에도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최근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잠재성장률 역시 계속 하향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투자환경이 개선돼야 한다.
문제는 우리 제도의 투명화와 분권화가 너무 앞서 가는 데 있다. 기업집단소송제도는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시행되고 있으며 공공기관의 아파트분양 원가공개제도는 시장경제 국가에선 찾아볼 수 없다. 은행경영의 독립성 강화도 좋은 예다. 대출심사능력이 미흡한 상황에서의 경영독립성 강화는 안전 위주의 은행경영을 초래했다. 은행들이 주택담보 가계대출에 몰두하고 기업대출을 기피하게 돼 자금분배 기능이 약화됐고,이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저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기업이 신규사업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ㆍ허가나 토지구입을 하는 경우 주민편의를 위한 과다한 요구로 인해 투자의 애로사항이 되기도 한다. 그 뿐 아니다.
합법적인 투자활동의 경우에도 개인이나 단체가 보상을 요구하며 불법적으로 사업장 건설을 방해할 때도 많다.
물론 이런 불법행위로부터 공권력이 기업을 보호해줘야 하나,우리 공권력은 관여하길 꺼린다. 과거의 정경유착이란 부패 시스템에서 투명한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상당기간 정부의 적극적인 관여가 있어야 지속적인 기업의 투자활동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