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노사정위 차라리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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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노사정 대표가 일자리창출을 위한 사회적 협약을 체결했을 때 언론들은 넓은 지면을 할애해 그 의미와 배경을 다뤘다.
기사옆에는 마치 상생의 노사시대가 도래한듯 노사정 대표가 손을 굳게 맞잡은 사진도 큼지막하게 곁들였다.
이 협약에서 노동계는 임금안정에 나서고 경영계는 투자와 일자리나누기 등을 통해 고용증대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정부 역시 노사합의 정신을 살려 세제 및 금융지원,고용촉진장려금 등을 통해 대대적인 일자리창출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그동안 노동계 파업에 눈살을 찌푸려온 국민들은 '우리나라도 이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처럼 대타협의 노사문화가 정착되는구나'하는 기대와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협약체결은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웃지못할 코미디였음이 드러났다.
임금안정에 나서겠다고 약속한 한국노총은 협약체결 직후 전국 산하 노조에 10.7%라는 두자릿수 임금인상률을 골자로 한 임금협상 지침을 내려보냈다.
투자와 일자리나누기를 강조했던 한국경총 역시 일자리만들기를 위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정부는 협약체결 직후 사회적 협약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과 정부종합대책'이란 것을 발표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년 추진해오던 일자리창출 계획을 긁어모은데 불과했다.
노사정 3자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버린 것이다.
참여정부가 모델로 삼고 싶어하는 네덜란드는 어떤가.
2003년 고용조건 협의에 관한 노사단체 선언문을 보자.여기에는 '노사교섭 당사자는 단체교섭때 예상물가상승률 2.5%를 넘지않는 수준에서 임금을 올리는데 동의할 것을 촉구한다'는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노사가 '임금안정과 고용창출'을 다짐한 뒤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반해 네덜란드 노사는 실사구시의 약속들로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다.
기본 토양은 척박한데 무조건 선진 유럽식 노사관계를 흉내내보자는 모방심리가 결국 노사정'합동쇼'를 만든 셈이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대화란 게 모두 이 모양이다.
노동계 재계 정부 3자 합의로 법제화하겠다던 노사관계법·제도선진화방안(노사 로드맵)은 노사정위에서 2년 가까이 잠을 자다 엊그제 노동부로 되돌려 보내졌다.
민주노총은 내부갈등으로 계속 불참해왔고 최근엔 한국노총까지 노사정위를 탈퇴,더 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년의 허송세월을 보낸 노동부는 이제와서 공청회 등을 거친 뒤 입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처음부터 우리 몸에 안맞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다 이 꼴을 당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가 발달된 유럽의 강소국가들조차 노동관련법안은 노사합의에 의해 처리하는 경우는 없다.
논의해봐야 갈등만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노사경쟁력이 세계 꼴찌인 나라에서 노사로드맵을 노사합의로 처리하려고 했던 발상 자체가 욕심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일자리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과 2년간의 노사로드맵 처리과정에서 유럽식 모델이 우리 사회에선 오히려 비용만 늘리고 짐만 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를 이끌고 있는 노사정위를 폐지하거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은 어떨까.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