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좋은 점'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상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돈도 시간도 안들고,끝내고 싶을 때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기막힌 노릇인지.선덕여왕을 향한 가슴 속 불을 못꺼 영혼이 서라벌을 태웠다는 지귀의 짝사랑을 시인은 이렇게 옮겼다. '…살(肉體)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중 그중 빛나는 황금팔찌를 그 가슴 위에/ 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 스러지지 않거든…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천년의 지혜가 가꾼 국법보다도 국법의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서정주씨의 시 '선덕여왕의 말씀'중 일부다. 짝사랑으로 인한 상사병에 목숨을 잃은 게 어디 지귀뿐이랴.얘기나 소설 속 주인공으론 황진이를 애모하던 서생이 있고,로테를 못잊은 베르테르도 있다. 전해지기로는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형은 제수에 대한 짝사랑을 못견뎌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짝사랑의 열병은 앓는 사람의 넋을 빼앗는다. 지나고 나면 '왜 그랬을까' 내지 '잠깐 눈이 멀었었지' 싶은 사랑도 정작 매달려 있을 때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거나 거들떠보지 않는 줄 알면서도 좋아하는 건 그런 까닭이다. 결혼정보업체(비에나래)에서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남자가 여자보다 짝사랑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남자는 절반 정도가 '6개월에 한번 이상' 짝사랑 상대를 떠올린다고 한 반면 여자는 30% 미만이었다는 것이다. 짝사랑 상대가 실제 사귄 사람보다 낫다고 여긴 경우도 남자가 많았다고 한다. 여자들은 지난 사랑에 대해 미련을 덜 갖는다는 말도 되고,과거보다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실제 남성들은 첫사랑의 삶을 궁금해하는 반면 여자들은 잊고 지내는 수가 많다. 짝사랑으로 알려진 이들 대다수는 남자다. 글쎄,혹 남자의 과거는 묻지 않고 여자의 과거만 묻는 탓은 아닌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