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새벽 5시 서울 경복궁 앞. 어두운 주차장엔 간드러지는 북한가요 '반갑습니다'가 울려퍼진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개성시범관광이 실시되는 날. 시범관광객 500명 중 절반은 개성이 고향인 실향민이다. 날이 밝자 14대의 버스가 일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아침안개를 헤치고 자유로를 1시간여 달리자 도라산 출입사무소가 나왔다. 이곳에서 개성시내까지는 불과 13km. 걸어서도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잘 닦여진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도라산역을 지나니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의 주인공인 녹슨 기차와 북측 최남단 마을 평화리(기정동 마을)가 보인다. 불과 몇 분 만에 북측 출입관리소가 나타났다. 관리소 옆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판매원들이 북한특산품을 팔고 있다. 가장 비싼 물품은 250달러짜리 구렁이술이란다. 여기서부터 버스에는 북한 안내원 2명이 동승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무뚝뚝한 말투. 그래도 궁금증 많은 관광객의 질문공세에 꾸준히 대답을 해주는 모습이 정겹다. 버스가 다시 출발한 뒤 10분도 안 돼 개성시내로 진입했다. 7∼8층 높이의 아파트,깔끔하게 단장한 통일관 식당,우리의 청과상에 해당하는 '과실남새상점' 등이 창 밖으로 지나간다. 얼굴의 반은 가릴 듯한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채 자전거를 타는 개성시민들의 모습도 이채롭다. 고려시대 성균관이었던 고려박물관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20분. 마당에 들어서니 높이 31m의 은행나무 2그루와 천년세월을 견뎌온 느티나무가 먼저 인사를 한다. 박물관 안에선 시종 웃음을 머금은 해설원의 안내가 이어졌다. "개성 깍쟁이란 말은 개성상인이 점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디요. '가게쟁이'에서 유래했습네다. 사실 개성사람은 깍쟁이가 아닙네다." 다음 코스는 고려충신 포은 정몽주가 자객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선죽교. 다리 인근에는 포은의 충정을 기린 국보 제128호 표충비가 서 있다. 관광객 윤정덕씨(71)는 55년 전 선죽교에서 벗들과 찍었던 사진을 들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그리곤 16세 때에 섰던 그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촬영을 했다. 하지만 긴 세월과 분단은 윤씨에게서 사진 속의 벗들을 앗아가고 말았다. 개성의 이름난 먹거리 약밥과 찹쌀튀김인 우메기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개성관광의 하이라이트인 박연폭포를 찾았다. 박연폭포까지는 개성시내에서 약 35분. 평양행 고속도로에 오르니 송악산이 멀리 눈에 들어온다.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을 닮은 송악산. 영락없이 코가 오똑한 미인의 형상이다. 박연은 폭포 위쪽에 있는 연못 이름. 물은 박연에서 아래쪽 고모담을 향해 37m의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비가 온 뒤라 수량이 많아진 걸까?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뽀얀 물보라와 함께 보는 이를 압도한다. '송도 3절'의 하나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폭포의 장중함을 가슴 가득 담고 나오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듣는다. 고향을 다시 뒤로 하기 싫은 실향민들의 심정을 아는지 개성땅이 촉촉히 젖어든다. 돌아오는 버스 속,실향민들의 얼굴에는 고향을 다시 찾았다는 감격과 아쉬움이 아련히 교차하고 있었다. 개성=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