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 코리아리서치 회장 yjpark@research-int.co.kr > 이번 에세이로 9번째의 글을 마감하게 됐다.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겨 어렵사리 시작한 글인지라 칼럼을 마치게 되니 남다른 감회와 보람을 느끼게 된다. 서로 바빠 소식이 끊겼던 지인들의 격려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게 했고, 신문의 전파성과 위력을 새삼 깨닫게 했다. '글'이 이럴진대 '말'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내가 말을 하지 않고 또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 않는 것이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것인 줄 몰랐다." 휴가를 이용해 최근 유행하고 있는 템플스테이(사찰체험)에 다녀왔다는 후배의 말이다. 불자도 아닌 후배가 경험한 사찰체험 중 다른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묵언체험을 통해 말을 하지도 않고 남의 말을 듣지도 않으면서 나를 더 성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인간에게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면서도 때로는 인간관계를 가로막는 장벽일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 도구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하루에도 참 많은 시간 동안을 남에게 이야기를 하고 또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또한 요즘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의 전자매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소리 없이 말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말이 넘치는 세상이다. 후배의 말을 경청하면서 우리가 무수히 내뱉거나 들은 말들이 꼭 필요한 말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내가 경험하기로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 말만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체로 말을 많이 하다보면 불필요한 억측이나 가정도 많이 하게 되고 생각 없이 불쑥 내뱉는 말이 엉뚱한 의미를 전달하거나 의도된 거짓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경우 말은 소음이고 커뮤니케이션의 방해물이다. 조직에서도 이런 유형의 커뮤니케이션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조직에 대해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해 유난히 말이 많은 조직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남의 말까지 곁들여가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나중에 판단해보면 대부분은 주관적인 생각을 포장하는 말들이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거꾸로 어떤 사람은 마땅히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침묵하는 경우도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도 애써 침묵한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을 고수하는 것은 어찌 보면 회피이고 비겁한 행위이다. 그러고 보니 말하기가 새삼스럽게 어려운 일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가끔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말도 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듣지도 않으며 정적이나 고요에 머물면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