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베트남전 파병은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경제 성장의 하나의 촉매였다. 1965년부터 1972년까지 8년여간 베트남의 전장에서 쓰러져간 젊은이의 `핏값'으로 받은 달러는 `베트남 특수'를 불러일으키며 한국경제 자립의 바탕이 됐다. 우리 정부는 1966년 한국군 월남 증파의 선행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차관 제공 약속은 물론 전쟁물자 및 용역의 한국 제공, 한국군 장비 현대화 지원 등을 약속받았다. 미국과 `브라운 각서'에 합의한 뒤 `경제빈국'이었던 한국은 베트남전 참전을 계기로 `쌀 한 톨'이라도 더 지원받기 위해 외교 총력전을 전개하게 된다. 이번에 공개된 정부의 베트남전 관련 외교 문서들에서는 박정희(朴正熙) 정부 시절의 이 같은 외교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브라운 각서 합의 이후인 1966년 10월 24∼25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베트남전 참전 7개국 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각오는 남달랐다. 회담 열흘여 전인 13일 오후 9시30분, 외무부는 유양수(柳陽洙) 주필리핀 대사에게 긴급 전보를 타전했다. 정부는 전보에서 "필리핀이 마치 이번 회의를 평화모색 회의처럼 생각하는 데 대해 불만스럽다"며 "`군사적인 정세의 검토 및 전쟁노력의 강화 방안'을 반드시 의제에 포함시키도록 하라"는 직전 훈령을 되새겼다. 베트남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토의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을 위해 정상회담이 소집됐다는 식의 해석에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는 아울러 "주최국(필리핀)이 제시한 회의의 가명칭 `Manila Summit Peace Conference'에서 `Peace'를 삭제토록 훈령한 것도 이 같은 취지"라고 강조했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회담을 통해 `아시아의 지도자'로 부상하려는 야심으로 베트남 사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에 거듭 초점을 맞추는 데 대해 베트남전에 따른 군사.경제적 반대급부가 많은 우리 정부가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측에 월남 한국군에 대한 `김치 보급'을 요청한 것은 우리 정부가 직접적이고 다소 노골적인 군사.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의사표현에 다름아니다. 정상회담 이듬 해인 1967년 3월8일 정일권(丁一權) 국무총리는 미 백악관을 방문, 린든 존슨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친서에서 베트남의 경제개혁 등 평정계획 참여와 한국군 장비 현대화와 같은 국가 차원의 중대사 해결을 요청하는 가운데서도 어쩌면 현실적으로 더욱 "절실한" 문제인 주월 한국군의 `김치 통조림' 보급 문제를 끄집어 낸다. 박 대통령은 A4 용지 두 장 분량인 친서의 3분의 1 가량을 이 문제에 할애했다. 그는 "월남의 한국군이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조치를 바란다"면서 "우선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식 빼놓을 수 없는 특이한 고유의 전통부식인 `김치'만이라도 한국군이 하루바삐 먹을 수 있게만 해도 사기는 훨씬 앙양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어 러스크 국무장관, 맥나마라 국방장관, 험프리 부통령과 함께 회담한 자리에서도 김치 시레이션 공급 문제를 테이블 위로 올렸으며, 결국 같은 달 17일 박 대통령에게 "김치문제는 멀지 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낭보'를 띄우게 된다. 대통령의 친서가 한 나라의 대표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형태이자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전할 때 작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의 `김치 통조림' 언급은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라고 할 만 하다.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