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인 < 논설위원 > 오른쪽 날개(右翼)가 주류였던 시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제목의 책은 일종의 사상적 오아시스였다. 그 제목 하나만으로도 왜 왼쪽 날개가 필요한지 금세 일깨워 주곤 했다. 이념의 균형, 사상의 형평을 강조한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지금은 당시보다 우리 사회의 좌우 날개가 훨씬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과연 새가 제대로 날고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새가 날아가는 힘의 원천인 몸통은 오히려 유연성이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문에서다. 만일 그렇다면 오아시스로 알았던 곳은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만약 새의 날개와 몸통을 경제적인 계층으로 나눠볼 수 있다면 몸통은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인 중산층(中産層)으로 파악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빈곤층과 부유층이라는 양 날개의 존재가 불가피한 요인이겠지만 몸통(중산층)은 생명(경제)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탓이다. 물론 중산층에 대한 뚜렷한 정의는 없다. 보통은 국민들의 소득 크기를 순서대로 따져 중간 소득의 50%에서 150% 사이의 가구를 말한다.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겠지만 요즘엔 집 한 채 갖고 있으면서 월소득 300만원 안팎이면 중산층으로 볼수 있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의 붕괴나 몰락 얘기가 나온지도 벌써 꽤 오래전이다. 경제 양극화가 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꼭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빈곤화하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좀처럼 줄지 않는 3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정부 발표로도 700만명을 웃돈다는 빈곤계층,100만명에 이르는 단전가구수 등 몇 가지 통계만 봐도 빈곤의 그림자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소수의 상층을 제외하고는 온 국민이 빈곤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중산층은 한 나라 경제를 받쳐주는 허리다. 허리가 든든하지 않으면 내수시장이 유지될 수 없고 이는 결국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더 이상 중산층이 얇아지는 것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상황이 그런데도 좌우 날개 논쟁은 멈출 줄 모른다. 인천 맥아더 동상 철거논란은 상징적인 예일 뿐이다. 경제를 지탱해주는 허리가 잘려나갈 판인데 '과거'라는 블랙홀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좌우논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참여정부는 반환점을 돌았다. 남은 임기 동안 할 일이 많겠지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 바로 중산층의 부활이다.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사회가 안정되고 활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동안 주력해온 빈곤층 지원도 그런 노력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산층을 두텁게 하려면 결국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하고,이는 기업의 투자확대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업투자확대에 초점을 맞춘 경제활성화 정책을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비평가 버나드 쇼의 묘비(墓碑)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정말이지 더 이상 우물쭈물할 시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