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기술정책 겉도는 까닭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오춘호 < 과학기술부 차장 >
1895년 미국의 한 통신서비스회사는 대학교수와 정치가 언론인 등 당시의 미국을 움직이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100년 후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9세기 엄청난 과학기술 발전에 흥분하고 있던 이들 지식인은 20세기가 되면 지구촌이 '꿈의 낙원'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냈다. 그들은 전기와 전화, 철도의 출현을 보고 과학기술이 진정한 시민의 시대를 열 것으로 보았으며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을 신세계를 여는 슈퍼맨으로 대접했다. 그러나 이들의 예측은 많은 부분에서 빗나갔다. 기술문명의 덕분에 전쟁도 실업도 사라지고 사람들은 보다 현명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 선보인 자동차를 하찮게 생각하는 대신 비행선이 마차를 대신할 것이라는 예언을 해댔다.
마차가 미국 대륙을 뒤덮고 있을때 20세기 주된 운송수단이 자동차가 될 것임을 예견한 사람은 바로 GM의 창립자 윌리엄 듀랜트 정도였다. 2륜 마차를 만들었던 듀랜트는 마차와 자동차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엔지니어인 그는 직접 시장의 움직임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으며 마차가 곧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100년 뒤인 1996년에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미래연구소와 일본 미쓰비시 종합연구소가 똑같이 2005년의 기술과 유망산업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2005년이 되면 PC가 대량 보급되고 광대역 통신망이 붐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줄기세포의 복제,무선 인터넷의 등장,1인 휴대폰 시대 등 2005년 세태를 정확하게 맞히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 검색 엔진 야후의 창립자 제리 양은 곧 인터넷 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1995년에 이미 검색엔진 야후를 만들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인 양은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상품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 듀랜트와 제리 양의 공통점은 엔지니어라는 데 있다. 그들은 당대의 석학도 정치인도 리서처도 아니었다. 제리 양은 불과 26세의 나이에 시장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과감한 모험정신과 개척정신을 발휘했다.
과학기술부는 올해 초에 과학기술 석학 5000명을 동원해 2030년까지 등장할 미래 기술 761개를 도출하는 작업을 펼쳤다. 이를 기반으로 2030년에 쓰일 '미래국가 유망 기술' 21가지를 선정해 29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한다. 선정 기술들은 중장기 국가 연구개발 투자방향을 결정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기술 선정작업에 기업 현장의 엔지니어들 목소리들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제리 양 같은 참신한 발상을 가진 20대 도전적인 신세대의 목소리는 더더욱 담겨있을리 만무하다. 이처럼 미래기술개발을 준비하면서 현장과 신세대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비춰 볼 때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 국책연구비 집행이 엉망이고 연구성과도 기대에 한참 못미친다는 지적이 줄기차게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초기작업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