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신은 망했다.' 이갑수씨의 '신은 망했다'라는 시 전문이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도록 하는 게 신의 뜻이었다면 신은 분명 망했다. 해가 없어도 도시의 밤은 환하고 휴식은 사라진 듯하기 때문이다. 도시와 시골을 구분짓는 것은 빛이다. 자동차로 밤길을 달리다 갑자기 어둡다 싶으면 시골이다. 시골에선 서산에 걸려 있던 해가 넘어가고 들에 산그늘이 내려 깔리면 금세 천지가 칠흑같은 어둠에 묻힌다. 방 안에 불을 켜놓아도 마당에 나서면 먹물을 뿌린 듯 온통 깜깜한 가운데 달빛은 쏟아지고 별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처럼 캄캄한 게 밤이라면 도시엔 밤이 없다. 해가 저무는 즉시 사방이 다시 환해진다. 일몰 15분 뒤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그 전에 빌딩과 상가의 조명등은 켜진다. 여기에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보태지면 거리는 대낮처럼 밝고 화려해진다. 곳곳엔 24시간 영업점이 문을 열고 자동차는 밤새 거리를 달린다. 오죽하면 매미가 밤에 울까.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절약책으로 서울시가 시내 일부 구간에서 가로등 격등제를 실시하고 한강다리 경관조명등 소등시각을 오전 2시에서 1시로 1시간 앞당긴 데 이어 전국적인 전등 끄기 행사가 22일 밤 8시20분부터 2분동안 펼쳐진다는 소식이다. 에너지 시민연대가 주관하는 제2회 에너지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공공기관과 기업 시민단체 등이 참여,잠시 소등하고 그에 따른 전력량 절감 수치를 전광판에 올리는 동시에 이를 TV로 생중계한다는 것이다. 빌딩의 불빛만 사라져도 거리는 한결 어두워질 테니 아파트 단지나 집집마다 동참하면 잠시나마 별이 보일지도 모른다. 어두워지면 누구나 돌아갈 곳을 떠올린다.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친다고 하거니와 어둠은 앞으로만 향하던 길을 멈추고 자신과 주위를 주의깊게 살펴볼 시간을 갖게 할 것이다. 에너지 절약도 절약이지만 조용히 생각하고 쉴 시간을 위해서라도 가끔 칠흑같은 밤 속에 서 있어 볼 만하지 않을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