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가능성은 낮지만 휴대폰 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며 이에 대한 안전성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휴대폰 도ㆍ감청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종래의 입장을 수정한 것이다. 정통부가 정보통신 주무부처로서 책임있는 당국이었다고 한다면 진작에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내놨어야 할 대책이었다. 정통부는 국정원의 불법도청 파문으로 빚어진 국민들의 도ㆍ감청 우려를 불식(拂拭)시키기 위해 내년 말까지 개인별 통화를 암호화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음성 암호화 부호를 도입, 현행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시스템 암호방식을 변경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내년 말까지 이른바 복제단말기에 의한 불법 감청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발ㆍ착신 인증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와같은 몇가지 기술적 보완대책만으로 휴대폰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말끔히 해소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휴대폰 도ㆍ감청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관 등 정부고위 인사들은 도ㆍ감청을 우려해 휴대폰을 몇개씩 가지고 다닌다면서 정작 국민들에게는 안심해도 좋다고 얘기해 왔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정통부는 불법 도청장비의 설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형 도청탐지장치를 개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안전대책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못믿겠다는 국민들을 위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책은 전혀 근본적인 것이 못되며 소모적인 사회적 비용만 끊임없이 유발(誘發)할 뿐이다. 이 것은 우리가 바라는 정보화 사회가 아니다. 휴대폰 도ㆍ감청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하고자 한다면 문제가 터지고서야 마지못해 수긍하는 정부의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처음부터 사실을 사실대로 공개하고 대책을 세웠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불법적인 도청과 합법적인 감청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합법적인 감청조차 불법적으로 이용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합법적인 감청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만 국민들이 공감(共感)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