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 화가 > 내게 있어 정전의 기억은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려 아무 죄의식없이 시험 공부를 안해도 될 것 같은 밤, 어머니가 양초를 찾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정겹던,그 정적의 밤이 나는 싫지 않았다. 20여년 전,갑자기 찾아오는 정전의 어둠은 데이트하는 청춘들을 더욱 가깝게 엮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정전에 대비하는 일상용품인 하얀 양초에서 특별한 날들을 기념하는 갖가지 모양의 화려한 양초로 그 개념이 바뀐 지 얼마나 되었을까? 뉴욕의 아파트에서 살던 무렵, 정전을 두번쯤 만난 적이 있다. 한번은 한 두시간 정도의 짧은 정전이었고, 또 한번은 뉴욕 맨해튼 전역에 며칠 동안 전기가 끊겼던 커다란 사건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정지했고,화장실의 물도 나오지 않았다. 25층 아파트를 걸어 올라갔던 그 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 축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사용되는 예쁜 양초들은 오랜만에 그 옛날의 일상용품이던 양초의 기능으로 되돌아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촛불 한 자락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실로 오랜만에 다시 깨닫게해준 경험이었다. 비상사태가 오면 일순간 그 기능이 바뀌어버리는 물건들 중에 양초와 성냥과 손전등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손전등 하나가 지하철 사고 때 생명을 구해주기도하고, 성냥개비 하나의 불빛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사람을 구해주기도 한다. 하긴 요즘 어딘가 갇혔을 때 우리의 생명을 구해주는 일등공신은 휴대폰이다. 휴대폰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이 세상의 공중전화 박스는 스산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휴대폰은 커녕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곳에서 촛불을 켜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지닌 촛불의 기억은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달콤한 기능 외에도 무언가를 열렬히 소망하거나 불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단 촛불시위 정도였다. 전기 사용료를 못내서 단전이 돼버린 낡은 집에서 촛불이 옮겨붙어 타죽었다는 어린 소녀의 죽음은 어렸을 적 동화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2005년의 대한민국에서 빚어지는 현실이다. 서울에서 3000가구 정도가 전기 사용료를 내지 못해 촛불을 켜놓고 살고 있다 한다. 사람들은 그 어떤 어둠에도 오래지 않아 적응하기 시작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의 눈에는 어떤 것들이 보일까?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 부부가 백년해로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문득 모든 보이는 것들이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들,입에서 살살 녹는 케이크와 1만원짜리 커피를 파는 우아한 카페들,때마다 재벌 자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텔레비전 연속극들과 지구는 산책하기 좋은 별이라고 속삭이는 비싼 승용차 광고들,그렇게 현란하게 빛나는 보이는 것들 뒤로 아직도 이 땅에는 보이지 않는 허름하고 낡고 쓰러져가는 가난이 우리 어릴 적의 그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처럼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 가난은 어른이 되면 나타나지 않을 것 같던 우리 어린 날의 그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다. 우리는 모두 남의 절망에 관심이 없다. 칙칙한 이야기들은 빨리 잊어버리고 비행기를 타고 근사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면 그만이다. 최초의 인간과 함께 시작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간격의 계곡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이런 생각에 이를 때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소망을 가져본다. 정말 2005년 이 땅의 어두운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조금씩 세상의 밝음을 나누어줄 수는 없는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