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5일 "2002년 3월 이전에는 불법감청이 있었다"고 뒤늦게나마 고해성사함에 따라 천용택씨 등 전 국정원장들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 여야 공방을 촉발했던 국정원 도청 의혹 사건과 관련,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을 놓고 부실수사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천용택씨 등 전 국정원장들도 수사 가시권='안기부 X파일'이 공개된 이후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돼온 천씨가 이끌었던 국정원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사례가 국정원 발표로 확인됐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99년 5월 23대 국정원장에 취임했던 천씨는 그해 12월 법조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97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전에 삼성이 중앙 언론사 간부를 통해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보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천씨는 또 도청조직 미림팀장인 공운영씨와 모종의 뒷거래를 통해 공씨의 도청 테이프 유출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사업 관련 이권을 챙겨주는 대가로 테이프를 받아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특히 천씨가 단순히 공씨의 잘못을 눈감아준 데 그치지 않고 불법도청을 지시했다면 엄중한 사법처리는 불가피해진다. 천씨 외에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취임한 이종찬 전 국정원장(98년 3월∼99년 5월),임동원 전 원장(99년 12월∼2001년 3월),신건 전 원장(2001년 3월∼2003년 2월) 등도 공소시효(7년)에 걸려 사법선상에 오를 수 있다. ◆국정원 부실수사 논란=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2002년 10월께 국회에서 "국가정보원이 도청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A4용지 25장 분량의 자료를 공개한 뒤 휴대전화 도청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해 파문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4월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국정원 관계자들의 조사와 국정원 내 감청시설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정원이 불법 감청을 하고 있다거나 휴대폰 감청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달았다. 검찰은 휴대전화 도청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 단계에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국정원이 "휴대전화도 유선전화와 연결됐을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도청이 가능하다"고 자백,검찰 발표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전 안기부 1차장 '오정소 미스터리'가 풀릴지도 관심사다. 국정원에 따르면 오씨는 94년 2월 국내정보 수집 담당 국장으로 부임한 뒤 그해 6월 공운영씨를 불러 미림팀을 재구성했다. 오씨는 미림팀에 도청을 지시하고 그 내용을 보고받았으며 이듬해 1차장으로 승진한 후에도 공씨로부터 직보를 받았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렇게 생산된 도청내용이 누구에게 보고돼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미림팀과 정권실세 간 연결고리인 오씨를 상대로 조사했으나 오씨가 입을 굳게 다무는 바람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